홀로
인생은 오고 가는 길이 혼자다. 용감하게 혼자서 이 험난한 세상에 뛰어들어 일정한 기간 열심히 살며 헤매다가 때가 되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불현듯 정붙이고 살던 곳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래본들 백 년도 채 미치지 못하는 세월에 이런저런 형태의 삶을 즐겁게 누리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게 견디며 살아내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 인생은 물방울처럼 또는 무지개색을 뿌리며 두둥실 떠다니다가 터지며 사라지는 비눗방울 같은 존재다. 거품이나 방울이나 비슷하지만 거품은 무언가 허무한 맛이 느껴져서 방울로 표현하고 싶다. 여하튼 인생은 절대적인 나 홀로 여정인 셈이다. 물론 쌍둥이 경우는 한배로 같이 오기도 한다. 또 갈 때도 한꺼번에 떠나는 참사 같은 경우도 궁극적 관점으로 보면 모두가 각자요 뿔뿔이다.
공원길을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 노부부가 보기에 아름답고 참으로 부럽다. 나도 그렇게 걷고 싶지만 젊었을 때 허방하게 날뛰다가 소중하게 내게 배당된 쿼타를 다 써버려서 잔량이 없나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아쉬워한다면 뻔뻔한 자라고 빈축을 살 수 있다. 실제로 나와 허물없이 가까운 지인이 어느 날 내게 톡 까놓고 말했다. “손형은 젊었을 때 실컷 잘 놀았으니 남들 부러워할 것도 없잖아요.” 염치가 있으라는 질책으로 들려서 뜨끔했다.
여름날 개미는 땀나게 일하는데 베짱이는 노래 부르며 처놀다가 겨울에 고생하는 동화책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지 천지를 모르고 놀 때는 좋았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부러워하는 그 노부부도 조만간 헤어지는 슬픈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슬픔의 비례는 지금 다정하고 따뜻한 즐거움의 천배 만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러한 자연의 법칙으로 내 처지를 합리화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다. 그러한 행위는 루저의 변명일 뿐이다. 그렇다고 찾아올 그 슬픈 날을 미리 염려하거나 대비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가급적이면 즐겁게 나누며 살다가 떠나는 삶이 아름답고 그 이후의 몫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 아닌가. 미리 걱정한다고 또 준비한다고 득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살이는 대비 자체가 허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저 살아 숨 쉬는 동안 감사함으로 순간순간을 이어 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5년 전에 나는 한차례 경험을 했다. 느닷없이 쓰러져 심각한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은 마눌의 상태는 백척간두의 상태였고 당시 집도 의사는 10퍼센트 정도의 회복 가능성을 내게 말해 줬다. 순간 정적이 감돌며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병원 문턱만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아마 무아지경이 있다면 바로 그 당시의 시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가 실종된 아주 단순한 삶의 시간이었다.
은혜롭게도 심천 한인교회 성도들의 신실한 기도 덕분으로 돌아와서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먼저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단순하게 보면 인생은 혼자 떠나는 법을 훈련하는 도장 같은 곳이다. 그러므로 같이 있을 때는 즐겁게 지내며 혼자 있을 때는 내면의 평안을 추구하며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여정을 두려움 없이 맞아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지인이든 친구든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가끔 통화하면서 밥이나 한 그릇 하자는 말도 빈 그릇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은 이들 중 대부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라는 보편적 진실이다. 설사 그러한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슬퍼할 여유가 없다. 남아있는 시간이 적음에도 여전히 덜 중요한 잡다한 일에 매달려 산다. 실상이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다. 모두 그렇게 살기에.
나는 비교적 솔직하지 못한 편에 속한다. 내가 쓴 글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의 눈치를 본다. 혹시라도 잘못된 표현이나 거친 부분이 있다면 쪽팔린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하기야 영국의 위대한 작가 버나드 쇼도 이중성을 보였다는데 오죽하랴. 그러나 내가 어느 날 짝짝이 양말을 신고 다녔어도 대부분은 알지도 못했다. 세상이 내가 나를 보는 만큼 나를 볼까?
Therefore 내게 관심을 가지시고 늘 지켜 보시는 창조주를 생각한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The sun shall no longer be your light by day, nor for brightness shall the moon give light to you; But THE LORD WILL BE to you AN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your GLORY.(이사야6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