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치까리
고춧가루의 갱상도 방언이 꼬치까리다. 소년시절에 한양으로 유학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갱상도 방언이다. 서울로 유학하여 고교 다닐 때 절친들은 한결같이 호남 출신이다 보니 그쪽 방언도 제법 익숙하게 되었다. 같은 반에 나보다 두 살 많은 형뻘인 광주출신 남현이는 떠가리도 컸고 교내 웅변부 부장이었는데 육자배기를 완전 잘 불렀다. 한 번씩 교실에서 흥부가와 춘향가로 창을 부를 때 거의 프로급이었고 당시 화가이시자 담임이신 화백 고화흠 선생님이 무대를 마련하셨다. 학우들은 환호하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전라도의 특이한 억양은 맛깔스럽고 친근해서 욕도 욕처럼 들리지 않고 오히려 구수한 재미가 있어서 정겹고 해학적으로 들렸다.
반면에 서울말은 좀 머시기해서 속말로 간지러운 느낌이 들다 보니 익숙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우리들은 마초의 삶을 추구했기에 한여름 소나기도 피하거나 우산을 쓰지 않았으며 교모의 챙에서 물방울이 주루루 떨어지는 것을 보며 오히려 즐기기도 했다. 그러니 얌전한 서울내기들과는 쉽게 어울릴 수 없었고 말투는 자연스럽게 성향에 따라 익숙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인들은 '아니 서울에 온 지 그렇게나 오래되었는데 여태 갱상도 사투리랑께'
글쎄 토속어를 사용한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구스인의 타고난 피부가 까맣다고 희게 하라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말투와 억양을 고치고 싶다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하면 된다.
우리가 어릴 때 늘 쓰는 일상용어에 왜인들 언어가 흔했다. 리야카 가마보꾸 모찌떡 등 참으로 많은 왜어에 노출되어 지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일본어를 쓰면 욕사발을 듣는 시절이 있었다. 국력이 약해서 타국의 지배를 받아서 민초들이 어쩔 수 없이 절인 배추처럼 익은 언어를 쓴다고 비방하는 것은 마당에서 곡물을 쪼아 먹는 참새 같은 소인배의 태도다. 힘없는 나라를 만든 위정자들의 원천적인 책임을 따져야지 그들의 부족함의 결과로 정복 국가의 종이나 머슴처럼 취급된 서민들과 그 후손들이 왜어를 쓰고 그들에게 배운 기술 용어까지 깡그리 비난하며 심지어 그것을 가지고 매국노라고까지 부르는 것은 언어의 폭력 이전에 상식 문제다. 그런 식이라면 기술도 일제면 피하고 독자적인 한국식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있어야지 지금의 중국처럼 베끼기는 왜 베낄까. 그런 행사를 하는 자들이 왜국으로 여행하여 나들이 먹방 사진을 짜르르 올리는 이중성을 보며 개탄이 아니라 까르르 웃음이 나오더라. 까르르.
불현듯 까르르라는 광화문에 소재하여 한번 들렸던 커피숍이 떠오른다. 까르르. 그때 거기 까르르에서 만났던 처이(처녀)는 지금 뭘 하고 지낼까?
꼬치까리는 매울수록 맛깔스럽다. 청양꼬치든 빨간 꼬치 든 우리나라 꼬치는 독특한 향이 있어서 태국 월남 멕시코 것들과는 맛의 속성 자체가 다르다. 시원하며 매운 청양 고추와 고추장 담을 때 쓰는 빨간 고추는 우리나라의 가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다.
꼬치는 맛이 아니라 통증을 유발하는 채소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덕분에 스카우트되어 데모 선동가로 뛰어다니던 대학 시절에 눈과 코 그리고 목을 괴롭혔던 최루탄도 고추의 핵심 캅사이신을 사용한 통증 유발제다.
음식에서 고추의 통증 유발 맛이 별미라면 생각해 볼 문제다. 삶과 연결하여 말이다.
팔씨름을 하며 용을 쓴다. 정맥이 튀어나오고 씩씩거리는 고통을 이기며 겨룬다. 돈내기도 아닌데 그렇게 힘을 쓰고 즐거워했다. 도파민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이든 축구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재미가 없다.
사람의 속성이 독특해서 뭔가 맛을 낸다든가 재미를 붙이려면 고통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숨이 목에 차도록 기를 쓰며 산을 올라가 정상에 이르렀을 때 그 시원함은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 이렇듯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차원의 만족을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다음날 여기저기 아픈 팔다리를 꾸욱꾸욱 누르며 통증을 음미한다. 아플수록 쾌감을 느끼는 일종의 학대를 즐기는 매조키즘인가.
사디즘이나 매조키즘은 성적인 것과 관련된 용어라 쓰기가 민망하다. 아무튼 인생살이는 단맛만 또는 맹물 맛으로만 살아가지 않게끔 설계가 되었다. 수많은 변수가 우리의 삶의 곳곳에 널려있다가 시시때때로 우연을 가장한 어려움이 필연처럼 나타난다. 그때마다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의 지수는 급격히 상승한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난리다. 비가 오면 축축해서 싫고 가뭄이 들면 황량하기에 싫다. 몸의 상태도 늘 변하고 한 곳이 괜찮으면 다른 약한 부분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게 삶이다.
살다 보니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신기하다.
꼬치까리처럼 매운맛을 삶에서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유한 자산으로 와이키키 해변에서 잡스의 표현대로 설탕물만 쫄쫄 빨면서 평생을 사는 것이 부러울까? 글쎄 일런 머스크 같은 위인은 일이 없으면 살아갈 의욕이 없을지도 모른다. 잡스도 에디슨도 심지어 워런 버핏도 돈이나 세상의 성공보다 일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맵고 톡톡 쏘는듯한 삶의 통증도 때로는 즐겨야 성장을 하는 게 아닌가.
쓰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나는 대로 썼다. 시편 11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It is good for me that I have been afflicted, That I may learn Your statutes.
(시편 1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