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

번지점프

by 손진일

태어날 때의 기억이 사라져서 모를 뿐 뭔가 내가 모르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마 번지 점프로 세상에 왔을지도 모른다. 탯줄 그리고 그 이전에 존재했고 현재도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확실히 있을 신의 끈에 매달려 뛰어내렸을 것이다. 삶을 마칠 때 역시 나는 다시 번지 점프 같은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대기 시간이 길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행을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 땅의 엔딩 이벤트다. 세상에 연결된 많은 줄을 끊고 홀연히 떠나야 하는 절체절명의 행사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변화에 그리고 디아스포라에 익숙해야 이 최종 트랜스퍼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데 있다. 뇌의 시스템은 그렇게 되어있다고 대부분의 연구 보고서는 말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

나이가 제법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태 살아온 행적을 돌아보게 된다. 이삼 년까지만 해도 뭔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영어공부를 하거나 코딩을 다시 해보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보면 마지막까지 벌이는 사투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습관적인 꿈을 접고 발레 기사로 새로운 일을 하게 된 후로는 육신이 고단하고 시간마저 여유가 없어지더라.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틈틈이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재미로 유튜브를 시청하며 가끔 새로운 차량에 대한 지식도 흡수한다.

오래전에 어떤 개그맨이 이 나이에 이걸 하리라는 멘트로 좌중을 배꼽 잡게 웃겼던 생각이 난다. 반대로 어떤 드라마에서는 노인역의 여배우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불렀다. 비록 상반된 콘셉트일지언정 둘 다 괜찮았다.

생각을 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끈질기게 추구한 것은 능력개발이었다. 뭔가 남보다 특출한 것을 갖추기 위한 여정으로 걸어온 셈이다. 평생을 그렇게 애쓰며 살았어도 능력의 수준은 지극히 평범하다. 노력에 비하면 성과가 적은 것이 아쉽다. 그중에 언어 특히 영어의 효율은 극히 낮은 편이었다. 피터 드러커를 일찍 알았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다음은 악기인데 최초 시도는 피아노였고 너무 늦게 시작했던 탓에 도중에 하차했다. 세칭 쪽팔려서 그만뒀다. 대학생이 초등학생 꼬맹이들과 함께 연습하기에는 뭔가 거시기해서였다. 그리고 기타를 잡고 꼬박 일 년 동안 열심히 쳤지만 향상되지 않은 실력에 실망했다. 형편없는 재능에 열정만 타올랐던 시절이 가슴 아픈 연가처럼 쓸쓸히 지나갔다. 피아노와 기타 둘 다 일 년 만에 미련 없이 접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홍콩에서 일할 때 플루트를 시도하려고 톰리에 뻔질나게 다니며 준비를 했으나 향수에 시달려 귀국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내재된 악기연주에 대한 끈질긴 로망이 붙들고 늘어지길래 선택한 마지막 시도가 색소폰이었다. 비록 실력은 평범해도 재미는 있었기에 20여 년을 불었다. 재능의 부족으로 내세울 것은 없어도 나름대로 즐거운 거리와 추억이 서려 있으니 성공한 셈이다. 심천에서 코로나 사태로 4년 전에 귀국하면서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이 아쉽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얼마 전에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라는 책을 읽고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저자 마리아 반 줄리앤이 자신의 삶을 통한 경험과 특히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신의 변화과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며 제자들과의 학구적 연구와 소통에서 발견한 생생한 에피소드를 리얼하게 그려낸 책이다. 저자는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그중 평범함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사람을 보며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라는 점이 닿았다. 나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드러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 각자가 귀중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공감했다.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주제로 엮은 작가의 진정함이 마음에 잔잔하게 울려 기분이 좋았다. 생각 같아서는 여러 번 읽고 싶어도 곧 괌으로 다시 떠나는 딸이 읽고 싶다기에 줬다. 원래 보던 책은 주지 않는 성향이지만 자식이니 어쩌랴.

책에 인용된 게오르게 뷔히너의 말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보잘것없는 사람도,

지나치게 추한 사람도 없다."

볼품이 있든 없든 각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소설을 쓰고 있다. 무슨 일이든 생업에 종사하는 현재의 일에 타인의 눈치 볼 것 없이 자신의 기준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알찬 삶이다. 고객의 차량을 성심성의껏 잘 다루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동안 하던 일은 뭔가 새로운 계기가 되면 다시 하게 될지 모르지만 여태까지 내가 세웠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었든가? 그저 우연찮게 만들어졌을 뿐 내 능력으로 된 것은 전혀 없다.

되돌아보면 잘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잠시라도 일등을 해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른 과목에 비해 쉬웠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좋아했던 것은 만화 그리기였다. 그림은 재미있었기에 그렸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해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프로스트의 시가 생각이 난다.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수학을 전공했다면 선생이 되었을 것이고 만화를 그렸다면 만화가로 살고 있겠지.

But HE knows the the way that I take ; when HE has tested me, I shall come forth as gold. (욥기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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