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혜와 총명을 구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원하던 기준에는 크게 미달되었고 이유는 성품과 재능과 그릇의 크기가 그에 걸맞게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 분석한 결과다. 그렇다고 이 문제로 스스로 굳이 자책은 하지 않는다. 신이 내게 허용하신 분량에 따라 사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아닌가.
내가 일하는 건물에 어느 날 한 분이 새로 미화 담당으로 오셨다. 나보다 연배라 인사를 드리다가 알게 된 사실에 놀랐다. 사우디에서 오래 사업을 크게 하셨던 분이라는 말을 아는 지인에게 들었고 실제 내가 가깝게 지내던 사우디의 사업가를 잘 알고 있었다. 흔히 건물의 경비원처럼 수수한 차림으로 묵묵히 일하는 자세가 대단히 모범적이고 솔선수범으로 시키지 않은 일도 필요에 따라 했다. 한번 대화를 하기 시작한 후로 자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골프는 싱글이고 포커는 거의 선수급임을 알 수 있었다. 당구도 600 정도며 게다가 가수급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다재다능한 분이다. 이른바 잡기에 능한 분이다. 본인의 말로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그럭저럭이지만 노는 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고 했다. 술은 한 방울 마시지 못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집에는 마다하지 않고 참석한다고 했다. 그런 양반이 한국으로 귀국한 지 20여 년 지나도록 사우디에서 알던 사람들과 아예 교류를 끊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사우디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한 돈도 많단다. 옛말에 돈 잃고 사람마저 잃는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
스스로 돌이켜 보며 나는 어떻게 살았으며 현재의 좌표는 어딘가 살펴보니 평생 애만 쓰다가 제대로 성공도 하지 못한 얼치기다. 아무려면 어떤가. 잘나든 못나든 인생은 출생과 사망의 사이라는 어느 원로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이 난다. 삶은 하이픈이라는 말씀이었다. 1900.1.1.-2000.1.1.
방금 중국 선전에서 요식업을 하며 교민지를 발행하는 장로님과 점심 후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의 즐거운 담화시간을 가졌다. 이분도 젊었을 때 풍운아처럼 힘차게 사신 분이다. 신앙을 가지면서 삶의 변곡점을 찾으신 분이다. 비록 이분뿐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젊음을 기백으로 살았다. 지긋한 나이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눌려서 순두부처럼 변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누구라도 한 번씩은 내로라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과 환란이 딱딱한 삶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성경에서 욥이란 믿음의 사람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니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고 고백하였다. 인생은 풀무의 담금질을 한 후에 비로소 순금으로 된다는 말이다. 풀무는 뜨거운 시련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망치로 두들기며 검은 스케일을 털어내고 다시 달궈진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이유도 모르는 채 시련과 고통의 기간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살고 있다.
이제 연말이다. 많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의 곳곳에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광풍처럼 휩쓸고 다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무안 비행장에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긴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세상은 책임을 지려는 자 보다 면피하려는 자가 더 많다. 그리고 이해하고 품으려는 자 보다 헐뜯고 비방하는 자가 더 많다. 그것이 세상이며 이 땅의 논리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오셨다. 죄로 얼룩진 이 참담한 세상에 오셨다. 왜 오셨을까? 상고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의 희생으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이며 크나큰 축복인가.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요한복음 3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