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나들이
나이가 부담되어 결국 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한참 청춘인 가까운 후배가 대표로 있는 곳이지만 숫자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쉼 없이 열심히 다녔기에 허탈함도 있고 아쉬움도 컸다. 발레 기사는 차량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스킬을 갖춰야 하므로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중압감을 느꼈고 힘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열심히 노력하여 버텨온 것에 대한 안타까운 미련이 남은 탓이리라. 다른 직종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이 핸디캡이 되는 것은 이 직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런 이유인지 아니면 나의 좁은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친구가 결근하면 통상적인 경우로 여겨 단순히 과음을 했든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무리를 했겠지 하며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것 같이 여겨졌다. 반면 고령자가 일을 쉬면 나이는 역시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며 대체자를 찾을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 듯 보였다. 실상이 그런 형편이니 나이 든 사람은 아파도 내색을 할 수 없고 게다가 평소에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자연의 법칙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이 속편하다. 생각해 보니 인간은 나이별로 응하는 과정이 달라짐을 추론하게 된다. 반응에서 적응으로 적응에서 순종으로 또는 복종 혹은 굴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에 따라 팔색조가 되는 것이 삶의 무대다. 그러다가 때가 이르면 마침내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일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몸과 마음을 풀어주니 편하다. 이왕 일이 없다면 쉬기라도 잘 쉬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니 그나마 다운된 기분이 다소 나이스 하게 업 된다.
무급 휴가를 즐기는 김에 홍콩 여행을 떠났다. 저렴한 항공편을 찾았지만 쉽지 않길래 대충 일정을 맞춰 떠났다. 2년 만에 찾은 홍콩의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겹다. 젊었을 때부터 지냈던 곳이라 더 그런 느낌이다. 처음에 홍콩에 정착할 무렵에는 번번이 반대편 방향으로 가다가 당혹스러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음식도 만만치 않아서 고추장을 따로 들고 다니며 식당을 찾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고온다습한 홍콩의 기후에 진저리를 칠만큼 힘들었으나 역시 세월이 약이더라.
도착 이튿날 호텔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빅토리아 산꼭대기로 트래킹을 갔다. 한 시간 정도 도보로 걸어 정상에 도착하면 한눈에 펼쳐지는 홍콩의 정경이 아름다워서 갈 때마다 변함없는 루틴으로 삼은 취미다. 홍콩대학 뒷산을 경유해서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센트럴에서 간단히 조반을 먹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도 무난하다. 홍콩인은 우리와 달리 아침을 서둘지 않는 느긋함이 있기 때문이다. 다이깔로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 시작한 햇수가 거의 40여 년이 된다.
이번 여행은 일하러 온 것이 아닌 만큼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물론 일도 하지 않고 쓰기만 하면 어쩌지 하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정서적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종류의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은 쓰레기처럼 떠오르자마자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돈을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패러다임으로 몰고 가는 것이 문제다.
문득 남은 세월의 길이를 가늠해 보며 가용할 수 있는 돈을 비례해서 생각하게 된다. 팔순까지 살아갈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자전거의 페달처럼 뭔가 마감할 때까지 계속 밟아야 한다. 그 이후의 삶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연명의 수준이라 딱히 사회에서 활동할 처지가 안 되는 기간이므로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된다. 천국으로 가는 대기병으로써 살면 족하다. 루저의 변명이라 해도 좋다.
사실 돈이 너무 많은 것이 어쩌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세상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특히 강하고 빠른 사람에게는 훌륭한 도구다. 돈은 호랑이 등에 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약한 사람이 그 등에 타면 얼마 못 가 떨어지고 끝장이 난다. 돈은 때로는 맹수보다 무서운 존재다.
노인이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이 젊은이에 비할 수 있을까. 적게 먹고 덜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산다면 큰돈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시간에 비례하여 적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한 삶이 복된 삶이다.
침사추이에서 활동하는 우진 아우를 만나니 참 즐겁다는 마음으로 뿌듯했다. 같이 밥 먹고 바닷가 야경을 걷는 즐거움이 세상살이의 근심을 털어 내더라.
귀국하기 전날에는 중국도 비자 없이 다닐 수 있기에 선전으로 향했다. 푸티엔에서 서코우로 이전한 한인교회를 찾아서 오 선생님과 반갑게 재회를 했다. 선전을 떠난 지 5년 만에 다시 찾은 교회는 여전히 내 마음의 안식처였음을 알았다. 동북식당에서 대접을 해 주신 오 선생님과는 평생을 벗으로 여길 수 있는 사이다. 언젠가 다시 아우 우진과 함께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길에 십수 년이나 살았던 징텐역 부근과 아침마다 오르락내리락하던 연화산에 올라가서 선전의 야경을 훑어보고 도보로 시민중심을 거쳐 화창베이까지 걷다 보니 무려 36000 보나 강행군을 했더라. 그럼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만약에 몇 년 전이었다면 세상살이의 염려로 인하여 감히 실행하지 못했을 여행이었다. 대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되뇌어 보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이 오직 은혜로 근근이 이어져 왔음을 깨닫는다.
EVEN TO YOUR OLD AGE, I AM HE, AND EVEN TO GREY HAIRS I WILL CARRY YOU!, I HAVE MADE, AND I WILL BEAR; EVEN I WILL CARRY, AND WILL DELIVER YOU.(이사야 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