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8

'나'는 '숙제'를 좋아한 사람

by 알럽윤

8. '나'는 '숙제'를 좋아한 사람


처음 PT를 받는 날. 몇 년 만에 재보는 내 몸무게는 100Kg이 넘는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달 음식으로 풀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니 이 몸무게가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몸무게를 차근차근 줄여봅시다."


이 몸무게는 별거 아니라는 듯 트레이너 선생님이 말한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받은 PT는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버피'라는 운동도 너무 힘들고 땀이 우수수 떨어지는 내 모습도 별로였다. 처음에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었다.


1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일은 개인운동하러 나오셔야 돼요. 아직 근력운동을 혼자 할 수 없으니 러닝머신에서 1시간 걷기! 숙제입니다. 운동하시고 인증 보내주세요."


지쳐서 쓰러지려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웃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이 악마 같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주신 '숙제'는 내 안에서 도파민 같은 게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숙제'


어렸을 때 나에게 '숙제'는 정말 미루고 다 미루다 잠들기 전에 하는 짐 같은 존재였다.

매일같이 부모님은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바로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미뤄?'라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 '숙제'는 그런 존재였다.


하기 싫고, 귀찮은 존재.


근데 지금 나에게 '숙제'라는 단어는 흔히 말하는 '도파민이 터지는 감정.'이었다.

나에게 '할 일'이 떨어진 거 같은 기분.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났다.


내 하루에 루틴처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꼭 해야만 하는 이 압박감이 나를 왜 이렇게 들뜨게 하는지.

왠지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백점을 받아야지!'


이 생각이 들면서 일할 때 완벽하게 하려는 내 성격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열심히 하는 거? 남들도 다 잘해. 하지만 그 일을 남보다 잘해야 돼.'


사회초년생 때 첫 직장에서 만난 사수분의 말이었다.

그때 나는 '모든지 열심히 하면 나를 인정해 주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사수분이 한 말이었다.


처음 이 말에 상처를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단지 열심히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수분 눈에 나는 기대이하인가? 아님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답답해 보이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 나는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제가 일을 잘 못하고 있나요?"


"왜?"


"저번에 남들보다 잘해야 된다고 하셨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 말에 사수분이 빵 터져서 웃으셨다. 그리고는 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아. 근데 항상 열심히만 해."


난 이 말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일처리가 너무 답답해. 항상 다 열심히 하려니깐 일도 너무 느리고 일의 중요도를 모르는 거 같아."


그 말에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어서 그런지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수분 눈에는 불필요한 열심히 하는 행동이었다.


"아침에 와서 매일 체크히야 될 리스트와 기한이 있는 일들을 체크해 봐. 기한이 있는 일들 중에서도 중요도를 생각해 보고. 중요도가 높은 일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는 게 맞아. 생각보다 급한 일인 줄 알았는데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거 같아."


사수분 눈에는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집어준 것이다.

처음에는 '뭐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이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남들이 봤을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다음 날 수첩을 하나 꺼내 사수분이 말한 것처럼 하나하나씩 고쳐봤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사수분께서는 하루하루 숙제를 주었다.


처음에는 내 능력상 1-2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일부터 넘겨주었다.

이런 일들을 끝낼 때마다 '나 좀 커리어우먼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니고 못해도 1주일이 넘어야 해결되는 일들을 넘겨주었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을 받았을 때에는 사수분이 자기 일을 넘겨주는 거 같아서 짜증과 화남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렇지만 하나의 '미션'이라고 생각했다. 게임 상에 레벨업을 하려면 받는 퀘스트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1주일이 걸릴 일도 나중에는 점차 기한이 줄어들면서 짜증과 화를 받을 정도의 스트레스에서 어느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의 일이 되어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성장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성장하기 바랐던 사수분의 바람처럼 나는 많이 발전했고 성장했다.

그때 느꼈던 성취감은 감히 어떤 단어로 표현이 안될 정도였다.


.


오랜만에 느껴보는 '숙제'를 해결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을 느꼈다.

단지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이 나를 들뜨게 했다.


정말 오랜만에 내가 활기찬 사람이었다는 것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숙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아직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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