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서 살란다

나는 왜 이리 복이 없지

by 갸름이 조문희

'나는 왜 이리 복이 없지...'

이 나이에, 글쓰기 치유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의 머릿속에 박힐만한 문장은 아닌데...

떠나보낸 줄... 그래서 소멸된 줄... 믿고 있었거든.

쓴 뿌리.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어쩌다 효녀가 되었어요'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북을 계획 사람.

1부, 2부로 크게 나누고 4~6개씩의 소제목도 만들면서.


1부: 어쩌다 효녀가 되었어요.

1. 빨리 좀 와주세요. 엄마가 이상해요.(발행)

2. 나 쉬고 싶어.(발행)

3. 엄마에게는 엄마가 없었다.(발행)

4. 나는 네가 해준 게 제일 맛있더라.

5. 어쩌다 효녀가 되었어요.

......



2부: 그래도 같이 살자는 말은 못 했다.

1. 아파트가 뭐라고

2. 요즘 다 혼자 살아요

3. 따로 또 같이

4. 그래도 같이 살자는 말은 못 했다.

......


글을 쓰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엄마의 살아온 날들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 생각하였고 이따금씩 나를 괴롭혔던 퀘퀘 묵은 감정, 그와 동반된 애증의 시간(솔직히는 애보다 증쪽으로 더 기울었던)들을 털어 내려하였다.

살면서 일부러 계획한 적 없었기에 이 과정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엄마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진정한 화해라는 생각도 다.



지난 7월 엄마가 쓰러지시고 병간호를 위해 집으로 모시었다. 2주에서 한 달 정도 엄마를 잘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자원하는 마음이었고 이 정도는 딸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입에 맞을만한 식사를 챙겨 드리고 운동 시켜 드리면서 살가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계획했던 글을 찬찬히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주변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엄마가 죽을 때까지 너랑 산다더라..." 무척 랐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상했던 '어쩌다 효녀가 되었어요' 2부의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두 달 후, 엄마는 사시던 집으로 가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회복하면 가시는...

한두 달 엄마와 함께하며 글을 쓰리라, 생각했지 한 번도 엄마를 모시고 살 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구상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일이 눈 깜짝할 새 펼쳐지고 있었다.


걱정하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런 경우 보통 미혼의 자식이나 또는 이혼한 자식이 부모를 모시더라고. 다른 형제들이 이렇게 저렇게 취합해서 모실 수 있게 하더라고. 사실, 우리 집도 여러 사정상 미혼인 내가(집도 있고 빈방이 둘이 나 있는) 엄마를 모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했.




그러나 나는 결정을 했다.

'나는 왜 이리 복이 없지...'

지하실 저장 창고에 꼭꼭 묻어두었던 쓴 뿌리들이 솟구친 것이다.닳아 흔적도 없는 줄 알았던 감정들이 줄줄이 고개를 내밀었던 것. 날벼락처럼.

'어렵게 몸이 회복되어 다시 날고 싶은데'

'뭐 해 준 게 있다고 지금 와서'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내가 유산을 받았나 받을 유산이나 있나'



어느 날 엄마가 말씀을 시작하셨다.

"나 여기서 살란다."




그 무렵, 새벽마다 길을 걸었다.

'나는 왜 이리 복이 없지.'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여름의 아침임에도 살갗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내 입만 바라보는 형제들, 내가 눈 딱 감고 엄마를 모시겠다고 하면 모든 일은 만사형통이었으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꾸~욱 눌러놨던 섭섭증이 올라왔다.


어느 날인가는 이런 경험이 있는 지인이 말을 했다.

"쌤, 뭔가 억울함이 있을 거예요. 왜 하필이면 나지... 이런..."

섭섭증에 억울함이 더해졌다.




'나는 왜 이리 복이 없지'

나이 들어, 그러니까 나이가 들을 대로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당혹스러 피하고 싶었지만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생긴 이 문장 결국 사랑했던 가족들을 아프게 물었다. 부담감과 억울함이 처참하게 일을 냈던 것.

서로가 피가 났고 크게 이 져버렸다.



엄마가 조르기 시작했다.

나 여기서 살란다. (엄마, 이러지 마...)

딸 집에서 살아도 된다.(혼자 살고 싶어요...)

침대와 작은 농 하나는 들여와야겠다.(침대만 갖고 오겠다더니...)



사람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다고, 이런 일은 불편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핏자국이 선명히 남은 채로 엄마를 받아들였다.


글이 숨어버려 지난 몇 개월 모든 SNS 활동을 멈추었다.



P.S. 83세 엄마와 함께 산지 벌써 8개월,

쉽지않은 결정이었으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