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 인생 가운데 그저 편안하고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 있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힘에 부친 어느 날은 이런 기도를 하기까지.
하나님, 엄마 잘 모실 테니 어여삐 보시고(밝히기 뭐한 기도 제목을 올림)... 순간 스쳤던. 아, 끝없이 부끄러운 속 보이는 기도.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을 보냈고 겨울이 지나니 봄이 되었다.
어쩌다 함께 지낸 지 9개월.
엄마는 살아온 인생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사시는 것 같고
함께 사니 엄마가 더 이해가 되고 깊은 정이 드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사람들 마저,
혼자 사는 사람의 싸한 기운이 사라진 거 같다고,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고, 집에 훈기가 느껴진다고...
심지어 엄마랑 사니 밥 같은 밥(한식)을 먹어서 더 좋지요, 묻기까지.
그러니 그런가 보다, 잘하고 있는가 보다 했다.
그러나 며칠 전, 엄마와 집을 합치기로 한 친구에게 조용히 한마디 했다. "가능하면 따로 살아. 함께 사는 거 보통일 아니야."
언제부턴가...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에 마음이 흉흉하다.
수수 털털한 사람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느 상황이든 적응하려 애쓰며, 불편함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던 사람인데 요즈음 멘털이, 그러니까 정신줄이 바스러진 듯하다.
벌써 지친 거니?
아침 풍경 (feat. 계속되는 부엌일)
혼자 살 때는 거의 빵과 커피, 과일 정도로 간단했던 아침 식사 시간이 지금은 족히 2시간은 걸리는 듯하다.
아침 6시 40분부터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는 동안, 8시 40분에 도착하는 주야간 보호센터 차를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시는 엄마.
고요하게 누렸던 아침의 일상이 그립다.
다시 시작되긴 어렵겠지...
"노인과 살 때는 무조건 국은 한 솥을 끓여야 해. 그래야 일이 쉬워져요." 엄마와 함께 사는 지인의 도움말인데,
진짜 그랬다. 국을 끓여도 한 솥을 끓인다.
처음 가스 레인지위에 큰 솥이 올려지던 날의 생경함이 이제는 익숙해진 듯, 그렇다고 편안해졌다는 소리는 아니다.
엄마 집에 있던 그 덩치 큰 솥과 인연이 될 줄이야.
우거지가 뭔지 시래기가 뭔지 (우거지가 시래기고 시래기가 우거진 줄) 몰랐었는데... 우거지 된장국은 눈을 감고도 끓일 정도가 되었고 미역국 명엽채 볶음 깨순 볶음 취나물 볶음 등등, 거짓말 꽤 보태 요리사 수준이 되었다.
반복되는 퇴근길 풍경 (feat. 엄마 TV 소리 좀 줄여 )
귀가 잘 안들 리시는 노인과 산다는 거, 보통 일 아니더라.
퇴근길 아파트 도어록을 누르고 문을 여는 순간 기계음 소리가 왕왕왕 월월월 짖어댄다. 중문을 뚫고 나오는 TV 소리인데 발끝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
"엄마 TV 소리 좀 줄여." 청각 과민증 환자인 나는 빠르게 리모컨을 스캔, 부여잡고는 황급히 소리를 다다다다 낮춘다. 휴~우 한숨과 함께.
늘 볼륨 꼭대기 레벨에서 TV를 시청 중이신 엄마.
이 정도면 극장이다.
나는 어쩌라고...
평소에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것도 큰 소리로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하니 말하다 진이 빠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더라.
"엄마, 나 더 이상은 말을 못 하겠어.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엄마랑 살면서 내가 목소리가 너무 커져."
목구멍에서 억새풀이 자라는 듯.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느껴진다.
엄마의 저녁 시간 풍경은 전원일기를 보시거나 전원일기를 켜 놓고 성경을 읽으시거나 아니면 전원일기를 끄고 그냥 성경책을 읽으시거나 셋 중 하나.
거실 텔레비전이 늘 옛날 드라마를 재방하는 69번 채널에 맞춰져 있으니 이 정도면 골수팬.
어쩌다 바라본 전원일기 배경은 코 흘리게 어린 시절을 소환하고 김혜자 최불암 배우들이 그때는 푸릇푸릇했구나.
이 모든 일은 이제껏 내 소유였으며 여러모로 넓고 단정해서 애정 했던 거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니 아무래도 거실의 주인이 바뀐듯하다.
글쎄 며칠 전에는...
일반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여러 번 갖다 버리다 눈물이 쑥 빠지려는 순간이 있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급 당황.
혼자 살다 둘이 살면 두 배로 힘들어야 하는데도 두 배가 아닌 서너 배로 느껴지는 부담감.
단출하고 행동반경이 크지 않았던 살림 동선이어서 더 그런 걸까. 혼자 살 때와는 비중과 빈번함이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나는 집안 일, 일, 일...
몸이 힘들더라. 마음도 지치더라.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눈치 없이 마음대로 하시는 것도 아니고 미치도록 싫거나 죽을 만큼 힘들거나 이런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퇴근 후 엄마와 거리 두기를 생각한다. 산책을 하든 도서관을 가든 근처 카페를 가든, 집에 있지 않기로!
"갸름이님, 당신도 늙어요. 노인이 될 거라고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뭐지 않아 저도 노인이 될 거라는 거.
그래도 지금의 나는 지! 금! 이 가장 젊을 때잖아요. 지금에 집중하기에도 벅찰 때가 있는데 당신에게도 그 미래가 있을 테니 그저 입 닫고 감내하라면...
P.s. 혹시라도이 글을 읽고 마음 불편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면서도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