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단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서 나랑 살자

by 갸름이 조문희

살다 보면 용기 있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가슴 안에 있던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오는 용단의 순간.

어쩌면 삶의 모든 시간들은 이 용단의 순간에 의해 정해지는 걸까?

대학을 가는 것도, 유학을 가는 것도, 직장을 가는 것도, 어디에 사는 것도, 누구를 만나는 것도, 만났던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면 혼자 사는 것도...

크든 작든 삶의 방향은 이 용단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엄마가 나와 살고 싶어 하니(나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란다) 간혹,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결심 근처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런데다 이전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다시 병원을 다니게 되니 긴장도 되었에...


​일이 이렇게 되니 어느 날, 언니들이 엄마와 만나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막내가 몸이 아파 안 될 것 같으니 그냥 이전처럼 우리 집에서 살자고. 노인 센터(주야간 보호센터) 다니시면서 같이 살자고.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엄마는 그날 저녁, 퇴근한 내게 너무나 환한 얼굴로


"나 집에 가련다. 내가 이제 확실히 알았다. 이거 내가 너 고생시키는 거다." 결국 울먹이시면서.


슬픔을 숨기며 밝게 웃는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엄마의 환한 얼굴은 아마도 자신의 결심에 대한 긍정적 확고함과 그러니 부담 갖지 말라는 표정 관리였으리라.



​퇴원 후 병간호를 위해 집으로 오신 마에게 편히 지내시라 안방을 내어 드린지 2개월.

언제부턴가 사시던 집에 갈 때마다 옷가지들과 화장품, 모자 등 자신의 물건들을 조금씩 싸들고 오시기 시작하더니 안방 바닥에는 쇼핑백 또는 보자기에 싼 엄마의 물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게 되었다.


​그날, 그 보따리들이 왜 이리 눈에 들어오던지, 왜 이리 초라하고 안타까이 보이던지...

'저걸 풀어 보지도 못하고 그냥 가시는구나...'

나랑 살겠다고, 저렇게 짐을 싸 갖고 오셨는데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하고...


마음 가랑비 같은 눈물이 계속 흘러 ​

그날 밤, 함께 자자고 했다.

누워있는 엄마 손을 잡아보고... 꼭 껴안아도 보고...

아, 도저히 못 보내겠는...


그리고는 ​용기 내어 말을 했다. 이게 바로 그 용단의 순.


"엄마, 그냥 여기서 나랑 살아. 나랑 같이 살자. 나 괜찮아..."


​아, 그런데 한사코 아니라 엄마.

자기는 자기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거 너 고생시키는 거라며 집으로 가겠다고...

아침에 일어나 두어 번 더 여기서 나랑 살자, 말을 해도

아니라며 자기는 자기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단단히 결심이 서신 듯했다.




​그런데...

글쎄...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되어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오신 엄마는 당신 집에서 사는 것이 자신이 없으셨는지

"나 여기서 살게 해 줘" 미안해하며 말씀하셨다.

작디작은 모습으로...


​사실, 엄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계속 아파트에 사시다 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이 유치원을 개조한 집이어서 동선이 길었다.

부엌에서 냉장고로 가는 길, 안방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 일반 가정의 거실이라고는 할 수도 없을 정도의 넓은 거실...


그러니 엄마가 살기에는 참으로 불편 구조에 같이 살고 있던 작은 언니는 일이 바 늙은 엄마를 제대로 챙겨 드리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다.




나는 ​이렇게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가슴 안에 있던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오는 용단의 순간으로부터...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거 같은데, 이 나이에 어떻게 엄마랑 같이 살아, 별의별 고민이 많았지만... 용기를 내어 엄마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시간, 생각보다 괜찮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너무 큰 부담이나 두려움이 아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p.s. ​그런데요, 원래 사람은 이런 건가요?

함께 사니 더더욱 정이 드네요~


지난 9월 엄마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10월 어느 날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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