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좀 와주세요. 엄마가 이상해요.
엄마의 보호자가 되다
살다 보면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은 평범했던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된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온 나라가 시름시름 앓던 때.
엄마와 함께 살던 작은언니 부부를 대신하여 일주일 정도 엄마를 돌보게 되었다. 아침 9시경 출근하여 오후 6시쯤 퇴근하듯.
이렇게까지 하게 된 건 6월 말경부터 왠지 모를 탈진 증세가 있고 계속해서 식사를 못하셨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피해(코로나 상황이라) 함께 밥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근처 조카 집으로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하고... 더위를 피해 그런대로 재미나게 보내려 애썼다.
금요일, 엄마 집에서 퇴근을 하려는데 스치듯 작은 소리가 들렸다. "자식이라도 미안하다."
이게 뭐 그렇게까지 미안한 일이라고, 마음이 짠했다.
머리가 하얘지는 바로 그 사건은 다음 날, 토요일에 있었다. 오전 10시쯤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오늘 오지 마라. 너도 너무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니 오늘은 오지 말고 쉬어라."
어제 미안하다는 말씀이 있으셔서 나를 위한 배려인가 생각했다. 오늘은 쉴까...? 잠시 생각했지만 식사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여 12시쯤 엄마 집으로 갔다.
깊이 주무시고 계셨다. 그러나 왠지 평소와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이는 모습... 어떻게 할까 하다 피곤하다는 말씀이 생각나 아주 깊이 주무시는 건가도 생각했다. 잠시 기다려보는데...
점점 차오르는 의심.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평상시 주무시는 것과 너무 많이 달라 보였다. 살짝 깨워 보려는데 눈을 못 뜨시고 더 크게 흔들어도 반응이 없으셨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마구잡이로 쿵쾅거렸다.
이대로 돌아가시는 건가, 나 어떻게...
급하게 119에 연락을 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엄마가 이상해요.
응급실로 옮겨진 엄마는 응급처치 후 눈을 떴지만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저 허공을 향해 어디론가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는데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 낯설었다.
응급 의사는 평소 당뇨가 있었는지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이틀 전에 엄마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셨어요.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건 처음 봤어요. 옷이 완전히 저 졌더라고요.
옷을 짜는데 물이 줄줄 흐를 정도... 였... 어... 요."
대답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잘 알듯 했다.
급한 대로 몇 가지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일단 탈진 증상이 있으시고 저혈당 쇼크 같다고 했다. 입원을 하고 검사를 시작해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처음 만난 주치의는 MRI를 비롯한 CT, 뇌파검사 등 열흘 정도 입원하여 모든 검사를 다 해보자고 했다.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응급실 의사와 똑같은 말이다.
생각해 보면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한 주간 동안 같이 지내며 유심이 살펴본 엄마는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랐다.
하루는 청국장을 끓였다고 했는데 먹을 수가 없을 정도의 맹탕이었고... 모든 음식을 정성껏 하시고 손 맛도 뛰어난 분이셨는데 마늘과 파 넣는 것을 잊으셨던 거다.
왜 이리 방이 뜨거운 가 했더니 손빨래가 힘드시다고 그 더운 여름에 보일러를 틀어 놓고 땀에 젖은 옷을 방바닥에 말려 입고 계셨다.
이렇게 땀에 젖은 옷을 그냥 말리면 어떡하냐며 내가 빨아 준다 해도, 아니야 그냥 놔둬라. 나 편한 대로 하련다 하셨다.
지나치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걸 두 눈으로 봤는데...
말도 좀 어눌한 것 같고... 너무 마르신 것 같고...
분명 이상했는데...
이런 문제가 무언가를 말하는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나이가 들어 힘이 빠져 생긴 일이라고, 날씨가 지나치게 더워 지쳐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토요일에 이런 일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대낮에 엄마를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이런 일이 아무도 없는 밤에 생겼으면 어쩔 뻔했나.
검사 결과는 이랬다. 약하게 뇌경색이 살짝 왔다 갈 수도 있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고.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한 부모가 열 자식은 거느려도 열 자식이 한 부모 못 모신다는 옛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님 속사정, 건강 상태를 잘 모른다는 거다. 자식은 마음의 깊이가 얕아 알 수 없다는 거다.
효녀도 아니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이 사건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는 애증으로 범벅된 엄마와 나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