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의 보호자가 되다
그날, 엄마는 내 엄마 이기전에 고귀한 생명이었고 끝없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한 생명체였다.
"엄마 일어나 봐, 일어나 봐."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이상한 모습의 엄마를 바라보다 순간, 어떻게 한 생명이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살다 떠날 수 있을까...
가슴이 따끔거리고 눈자위가 뜨거워졌다. 굵은 가랑비 같은 눈물이 사정없이 주르르 흘렀다.
웬만하면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엄마의 품, 엄마의 손길, 엄마의 얼굴인데 우리 엄마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82세를 사시는 동안 엄마에게는 엄마가 있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다.
그날 엄마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119를 불렀고 응급 처치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눈은 떴지만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셨다. 바쁜 언니들을 대신하여 보호자란에 내 이름을 썼다.
이제는 내가 보호자...
홀로 두고 온 엄마,
살면서 한 번도 엄마가 없었던 나의 엄마,
계모 밑에서 비교와 결핍만을 보고 자란 나의 엄마.
그날 밤 오래된 흑백 드라마에선 어릴 적 끝없이 불평등, 불합리하고 편협했을 엄마의 굴곡진 세월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계모 밑에서 자랐다. 진짜 외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젖도 못 먹고 컸다고...
많이 들었던 이야기...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해도 그 시절 (엄마의 어린 시절) 계모 밑에서 자랐다고 하면 누구든 아, 힘들었겠다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엄마는 비교와 결핍, 끝없는 편애 가운데 성장했다. 엄마 인생에 부모로부터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릴 적 기억에 외할머니(계모)가 우리 집에 와서 엄마에게 잘못했다며 사과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배 다른 이모와 같이 왔었는데 얇은 비브라토의 목소리가 특이해 기억에 남는 분. 세월은 흘렀고 꽤 오래전 그분이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사촌동생 그러니까 엄마의 배 다른 남동생의 딸과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중에 사촌동생도 자신의 친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걸 알았다. 놀라움에 전화를 했다.
"왜 안 갔니?"
"언니, 할머니가 엄마를 너무 고생시켰어요.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할머니는 아빠밖에 몰랐거든. 가지 않는 게 엄마한테 의리를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화를 끊으며 '그럼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 너무 어이가 없었던지 계속해서 헛웃음이 났다.
헛헛... 헛헛허헛...
엄마 성장 과정의 문제는 깊고도 긴 후유증을 남겼다. 엄마 속에 있던 쓴 뿌리가 올라올 때면... 우리 가족은 지옥이었다.
우리 집에는 왜 이런 일이 생기며 무엇 때문이며 이토록 힘들어야 할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가슴이 닳도록 생각했었다. 참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어 사춘기 때는 반항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를 여러 번 고민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소설이나 심리학 책을 읽기도 했고 대학 때는 상담을 받기도 했다. 어느 때는 이 부분을 놓고 치열하게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라 감추고 싶지만 감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어 쓸 수 있는 것은 나는 적어도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듯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여러 번 그 프로를 보며 엄마를 이해했고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했다. 오데카솔(오은영 박사님의 처방전을 일컫는 애칭)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끝없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엄마를 보듬게 했으며 마음속 저장 창고에 꼬깃꼬깃 접어둔 내 어린 시절은 뒤늦은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늘 고맙게 생각하는 프로그램... 열혈 팬이다.
엄마에게 박혀있는 깊고도 질긴 쓴 뿌리를 어떻게 자를 수 있을까?
어릴 적 못 받았던 사랑, 헛헛한 가슴은 어떻게 채워 드릴수 있을까?
엄마가 입원을 하고 맞은 다음 날 아침.
나는 마트에서 멜론 복숭아 사과 바나나 평소 좋아하던 이오 요구르트를 샀다. 깨끗한 용기에 멜론과 사과를 한입 크기로 썰어 가지런히 담고 이오 요구르트와 함께 쇼핑백에 담았다.
다음 날은 복숭아와 바나나를 한입 크기로 썰어 가지런히 담고 이오 요구르트와 평소 좋아하시던 롤케이크를 쇼핑백에 담았다.
그다음 날은 멜론과 사과를 한입 크기로 썰어 가지런히 담고 이오 요구르트와 평소 좋아하시던 초코바를 쇼핑백에 담았다.
내가 엄마라도 된 걸까?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또 다른 금쪽이인 나의 엄마.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귀에 딱정이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날 엄마에게 엄마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하던지.
어릴 적 못 받았을 사랑을 어떻게든 채워드리고 싶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본다.
그렇다고 효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