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처럼 살고 싶었으나 쌈닭이 되었습니다

내향인 골드 미스의 결단

by 갸름이 조문희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날,

합창단 단원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는 '수선화 같으신 지휘자 선생님께'라는 첫인사로 시작하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이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열정적으로 자신들을 지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정성스레 담겨있는 내용도 좋았지만 가슴에 후훗~ 꽃 향기가 불었던 것은 '수선화 같으신'이라는 저를 향한 직유적 표현이었어요.


​우연이겠지만 아이러니하고도 공교롭게 그때 우리 집에는 수선화 한 뿌리가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꽃 집 앞에 청초한 듯 고혹적으로 서 있는 수선화가 눈에 띄어 집으로 데리고 왔거든요.

수선화를 구입 한 이유는 나를 닮은 듯한 묘한 끌림 때문.

외로운 듯 고독한 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드러내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서 제가 보였다고나 할까요?


"수선화 한 뿌리 가지고 뭐 이리 거창해?" 할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작이 늦은 제가 정신 차리고 인생을 막 시작하던 그때, 저는 아리따운 30대 초반의 아가씨였어요.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몸도 아파 대학도 늦게, 사회생활도 늦게 시작했거든요. 모든 게 늦었지요.

부침이 심했던 20대를 보내고 뒤늦은 출발을 시작한 저는 설디 설은 세상을 어떻게든 버텨야 했는데... 겨울을 이긴 수선화가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노랫말처럼.

​그런 분위기가 좋았을까요?

아니면 그 꽃을 좋아하면 그 꽃을 닮나요?

아니면 소름 돋는 나르시시즘의 극치일까요? (이 글이 나르시시즘으로 읽히길 거부하지만 그렇게 읽힌다면 제 부족의 소치이며 죄송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때의 저에겐 '수선화 같으신'이란 표현이 붙여졌고 우리 집 거실에는 수선화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적당히 하라'는 말 있잖아요. 살면서 이쪽저쪽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찾으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적당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인데, 약입니다.

문제는 수선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저를 향했던 표현인 '수선화 같으신'은 앞으로 그리 살고 싶고, 꼭 그리 살게 되리라는 종교 같은 것이 된 것입니다. 종교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소망을 가지고 조석으로 노력했겠어요. 수선화를 마음에 품으며 지성으로, 지성으로.


​아, 그러면 이처럼 간절했는데 저는 수선화처럼 살았을까요?


​그 대원에게 미안하지만 저는 더 이상 수선화가 아니랍니다.

그저 쌈닭이. 여전히 미혼에, 어쩌다 보니 이모할머니가 되었고요. (이모할머니가 될 때는 뒷목 잡았고요.)

​인생, 참 내 맘대로 안돼요.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어요. 혼자 산다는 것이. 나만 잘하면 괜찮은 세상, 정도를 지키면 안전하겠지? 아니었어요.

목 젖에서는 악다구니가 치솟고, 멱살을 움켜쥐고 마구잡이로 흔들다 엎어트리고는 뾰족구두의 앞코로 정강이를 후려갈기고픈 순간들이 도처에 널렸더라고요.


​사실, 쌈닭은 나 자신을 강하게 지키려는 몸부림 같은 건데요. 살면서 수선화가 아닌 전투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거예요.

그러니 수선화는 집어치우고 전투화를 신은 쌈닭이 되기로.


'너처럼 야리야리하고 고혹스럽게 살 순 없겠다, 빠이빠이'


​수선화처럼 살고 싶었으나 쌈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번도 쌈닭을 원한 적은 없으나 쌈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화가 날 때는 흥!! 벼슬을 치켜세우고 공격이 들어오면 맞받아 칠 수 있도록 더, 더, 더 날카롭게 부리를 쉭! 쉭! 쉭! 쉭! 갈면서.


​꼬끼오~꼬꼬꼬꼬꼬!!

꼬꼬댁~! 꼬꼬 꼭!!!! 꼬꼬댁~! 꼬꼬꼬 꼭!!!!




#쌈닭 #수선화 #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