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수선화 같으신 지휘자 선생님께'라는 첫인사로 시작하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이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열정적으로 자신들을 지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정성스레 담겨있는 내용도 좋았지만 가슴에 후훗~ 꽃 향기가 불었던 것은 '수선화 같으신'이라는 저를 향한 직유적 표현이었어요.
우연이겠지만 아이러니하고도 공교롭게 그때 우리 집에는 수선화 한 뿌리가 있었습니다.길을 걷다 꽃 집 앞에 청초한 듯 고혹적으로 서 있는 수선화가 눈에 띄어 집으로 데리고 왔거든요.
수선화를 구입 한 이유는 나를 닮은 듯한 묘한 끌림 때문.
외로운 듯 고독한 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드러내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서 제가 보였다고나 할까요?
"수선화 한 뿌리 가지고 뭐 이리 거창해?" 할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작이 늦은 제가 정신 차리고 인생을 막 시작하던 그때, 저는 아리따운 30대 초반의 아가씨였어요.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몸도 아파 대학도 늦게, 사회생활도 늦게 시작했거든요. 모든 게 늦었지요.
부침이 심했던 20대를 보내고 뒤늦은 출발을 시작한 저는 설디 설은 세상을 어떻게든 버텨야 했는데... 겨울을 이긴 수선화가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노랫말처럼.
그런 분위기가 좋았을까요?
아니면 그 꽃을 좋아하면 그 꽃을 닮나요?
아니면 소름 돋는 나르시시즘의 극치일까요? (이 글이 나르시시즘으로 읽히길 거부하지만 그렇게 읽힌다면 제 부족의 소치이며 죄송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때의 저에겐 '수선화 같으신'이란 표현이 붙여졌고 우리 집 거실에는 수선화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적당히 하라'는 말 있잖아요. 살면서 이쪽저쪽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찾으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적당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인데, 약입니다.
문제는 수선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저를 향했던 표현인 '수선화 같으신'은 앞으로 그리 살고 싶고, 꼭 그리 살게 되리라는 종교 같은 것이 된 것입니다. 종교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소망을 가지고 조석으로 노력했겠어요. 수선화를 마음에 품으며 지성으로, 지성으로.
아, 그러면 이처럼 간절했는데 저는 수선화처럼 살았을까요?
그 대원에게 미안하지만 저는 더 이상 수선화가 아니랍니다.
그저 쌈닭이. 여전히 미혼에, 어쩌다 보니 이모할머니가 되었고요. (이모할머니가 될 때는 뒷목 잡았고요.)
인생, 참 내 맘대로 안돼요. 예상보다 훨씬 거칠었어요. 혼자 산다는 것이. 나만 잘하면 괜찮은 세상, 정도를 지키면 안전하겠지?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