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홍콩 견문록 8화
오늘이 중국의 중추절(仲秋節), 즉 한국으로 따지면 추석인가 보다. 사실 한국의 추석이 일요일이길래 쉬는 날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학교를 쉬니 괜히 공짜로 휴일이 생긴 느낌이었다. 백신 패스도 발급받았겠다, 저번에 못 간 플리마켓도 갈 겸 학교 주변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오후 약속이 있는 호 형과 함께 오전에 홍콩 이공대 주변을 걷다가 홍콩 과학 & 역사박물관을 발견했다. 그중에서 홍콩의 역사에 대해 배경지식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역사박물관이 끌려서 안을 관람해 보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안 것은 크게 정리해 보면 홍콩이 고기잡이를 중심으로 살던 어촌이었다는 점, 그리고 영국 아래에서의 지배 이후 향후 50년간은 영국/중국 양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국양제'를 전제로 반환했다는 점이었다. 금융권이 발달한 홍콩이 사실 어촌 동네라는 말을 들으니 여수의 할머니댁을 좋아하던 나는 홍콩에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고, 일국양제가 50년 간이라고 적혀있음에도 과격한 시위 탄압으로 이를 무시하는 듯한 행위가 떠올라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아무도 모르면 없던 일이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나라는 없다." 이공계라고 역사 공부에서 도망쳤던 나였지만, 이 날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점심때가 되어 호 형과 헤어지고 Whompoa의 항구에서 배를 탔다. 처음엔 Central로 가려고 했는데, 내 의도와 달리 배가 오른쪽으로 안 가고 왼쪽으로 가길래 뭔가 싶었다. 도착지는 North Point. 홍콩섬의 동쪽(Central은 중앙에서 조금 서쪽에 있다)에 위치한 항구다. 그제야 잘못된 배를 탄 것을 알았지만, 기왕 꽁으로 생긴 휴일이니 플리마켓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도중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Kpop을 포함해 온갖 음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기도, 춤추기도 하는 여성들이 돗자리를 깔고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 점령이다. 정말 여태까지 가본 그 어떤 관광지보다도 밀도 높게 사람들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놀러 온 건가?' 싶었지만 종이 박스를 옆에 쳐서 바람을 막고, 텐트도 준비한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들은 필리핀 가정부들이었다. 홍콩 사람들이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그들의 집에서 잠시 필리핀 가정부들을 쫓아내고, 그럴 때마다 가정부들이 노숙을 하는 것. 화려한 홍콩 금융가의 이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이것이 가정부들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 그만한 돈을 받으니까 -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마치 그들이 쫓겨난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플리마켓에 도착하니 이미 하루가 다 지나있었고 플리마켓 안에도 볼거리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을 채운건 확연히 한국과 다른 홍콩의 차이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