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을 보고
코로나 시기는 정말 온갖 영화/OTT의 촬영이 미뤄져서 영화 마니아인 내게는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습니다. 작년 7월 오펜하이머 개봉 시기부터야 재밌는 영화들이 연이어 나오더니 - 심지어 3개월 안에 서울의 봄/파묘로 천만 영화가 두 개 나오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고, 이윽고 올해 7월에도 마블 영화 중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이 개봉했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번 작품의 두 주인공입니다. 원작의 둘은 '힐링 팩터'라는 초재생 능력을 바탕으로 곧잘 엮인다고 한다지만, 원작을 잘 몰라서 그런 점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저 데드풀이 나온 시점에서 이 영화가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데드풀이라는 캐릭터의 특이성에 있습니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데드풀처럼 '관객과 대화를 할 수 있다'라는 설정을 영화 전체에서 보여주는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데드풀 영화는 주인공이 그 어떤 대사를 해도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인기는 많은데 스토리는 맘대로 짤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어벤저스 이후로 생긴 '멀티버스' 개념을 어떻게든 융합하려다가 망가지는 다른 마블 영화들에 비하면 걱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딱 하나만 빼고요.
문제는 울버린입니다. 울버린은 과거 엑스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속된 말로 "캐리"라고 하지요). 심지어 엑스맨 캐릭터들이 갖지 못한 단독영화만 3편이 있을 정도로 울버린 - 특히 휴 잭맨의 울버린은 그 인기와 상징성이 굉장히 큽니다. 17년에 개봉한 <로건>으로 죽음까지 보여주며 아름답게 끝낸 이야기를 굳이 꺼낸다면 그 상징성이 망가지지 않을까요? 특히 영화의 주인공이 데드풀인데, 울버린이 제대로 이야기 구성에 껴있을 수 있을지 그 점도 더 의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 의문에 대한 감독의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하면 되잖아?"
실제로 영화 내에서 데드풀의 서사는 그 비중이 크게 있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 바네사와 헤어진 이후 자동차 판매원이 되기까지의 서사도 굉장히 짧게 보여주고, 마지막에 다시 고백한 후 바네사가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데드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데드풀의 등장을 주로 보고 싶었다면 아쉽겠지만, 저는 오히려 울버린이라는 인물을 영화 내에서 계속 살린 점이 더 좋았습니다. 울버린이 X-23의 앞에서 하는 독백에서부터 전투씬까지, 울버린을 이 영화의 '서브' 주인공이 아니라 '더블' 주인공으로 만드려는 노력이 보였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데드풀 영화인데 데드풀의 비중이 줄어들면 실패한 것 아닌가?" 네, 맞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데드풀' 영화라면 말이죠. 사실 이 영화는 데드풀 영화가 아닙니다. 데드풀이 설명하는 '엑스맨' 영화입니다. 과거에 없어진 폭스 영화사와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팬 영화, 그것이 이번 영화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비슷한 영화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있습니다.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요소 - 몸에서 실을 뿜는 첫 스파이더맨의 특징, 혹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결말과 오버랩되는 장면 등이 실제 스토리에 있어서 큰 의미는 없지만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 장면만큼 더 짜릿한 장면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서도 그런 오마주가 많았습니다. 울버린의 각종 전투 장면은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카산드라의 염력에 당하는 장면은 매그니토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후반부에 굳이 옷까지 터트리며 근육질 상반신을 노출한 것은 <엑스맨 탄생:울버린>의 명장면을 의도적으로 부각했습니다.
거기에 과거 폭스 영화의 블레이드/엘렉트라에 <로건>의 X-23, 뿐만 아니라 중간에 잠깐 나오는 <판타스틱 4>로서의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 배우), 그리고 헨리 카빌(<맨 오브 스틸> 슈퍼맨으로 과거 울버린 역에 지원했다고 합니다)의 울버린까지. 정말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평점 : ★★★☆☆ 스토리가 휙휙 넘어가고 일회성 인물이 너무 많다
팬심을 넣은 평점 : ★★★★★ 근데 그 인물들이 다 내가 아는 캐릭터다! <엑스맨>을 안다면 꼭 한 번 봐보시길!
추가적으로, 중간에 데드풀이 퓨리오사 영화를 패러디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었는데, 영화를 안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영화를 본 제 친구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니 퓨리오사 관람객 분들은 조금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