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보다도 더욱 심도 있는 포켓몬스터의 스토리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플 야도란 피죤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맞아) ♬
추억의 포켓몬스터. 내 유년 시절을 책임져준 피카츄와 지우의 대모험. 아마 당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면 포켓몬스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공감할 겁니다. 친구들이랑 놀 때도 피카츄 흉내를 내면서 놀았고, 포켓몬 피규어랑 빵처럼 관련된 제품도 우수수 쏟아졌으니까요. 오죽하면 아직도 예전 문방구에서 팔던 돈까스를 "피카츄 돈까스"라고 불렀겠어요?
그런데 포켓몬스터에 대해서 여러분이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포켓몬스터는 사실 게임이 원작이라는 사실! 네? 이미 알고 있었다고요? 하하... 괜히 머쓱해지는군요.
그렇지만, 사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스토리입니다. 여러분은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아예 기억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우가 피카츄랑 로켓단과 싸운다' 정도로 기억하면 그래도 애니 좀 보신 분이고,
'지우가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난다'까지 알고 있으시다면 핵심을 잘 알고 계신 분이겠죠.
하지만 의외로 포켓몬스터 게임에는 그런 스토리는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깊고 어두운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도 있었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잘 짜였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스토리를 가진 게임이요. 바로 오늘 소개할,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가 그것입니다.
먼저 스토리를 설명하기 전에 간단한 퀴즈를 하나 해보죠.
왼쪽과 오른쪽은 각각 포켓몬스터 블랙과 포켓몬스터 화이트에서 주인공의 동료가 되는 전설 포켓몬입니다. 어떤 포켓몬이 블랙에 등장하고 어떤 포켓몬이 화이트에 등장할까요?
아마 여러분은 검은색 포켓몬(제크로무)이 블랙에, 하얀색 포켓몬(레시라무)이 화이트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답은 그 반대입니다. 포켓몬스터 블랙에서는 레시라무를, 화이트에서는 제크로무를 잡아서 동료로 만들 수 있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이 의문을 풀고 싶다면 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 자세히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에서 주인공의 목표는 여타 다른 포켓몬스터와 동일합니다. 애니메이션처럼, 8개의 체육관 배지를 모아 사천왕과 챔피언을 꺾고 새로운 챔피언이 되는 것! 매우 심플하고 간단한 목표지요. 그 과정에서 플라스마단이라는 로켓단 같은 악당들도 무찌르고요.
그런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어디서 초록머리의 신기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주인공의 친구들 체렌처럼 주인공을 이기려고 하지도 않고, 벨처럼 같이 놀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너와 포켓몬에 대해 알려줘"라면서 주인공과 대화하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 관람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할 정도로 그렇게 적대적인 인물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체육관 관장들을 격파하며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점점 그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남자의 이름은 N. 그는 플라스마단의 수장인 게치스의 아들이자, 모든 포켓몬을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플라스마단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 걸맞게 N은 현 챔피언인 노간주를 포켓몬 배틀에서 꺾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줍니다. 그런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것은 세계의 신(神)과 같은 전설포켓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설포켓몬은 두 마리. 하나는 검은색 포켓몬인 제크로무고, 다른 하나는 하얀색 포켓몬인 레시라무입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대립하듯이 한 포켓몬이 N을 선택하자 다른 포켓몬은 그 반대편인 주인공의 손을 들어줍니다. 서로 다른 신의 힘을 얻은 주인공과 N. N은 이를 두 영웅의 대립이라고 표현하며 누가 옳은지 가려내자고 합니다. 그리고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주인공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흔한 두 사람의 대립, 그리고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는 서사 같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스토리가 녹아있습니다. 그 스토리는 이후의 N의 대사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레시라무와 제크로무... 2마리가 각각 다른 영웅을 선택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시대에 두 명의 영웅, 진실을 추구하는 자, 이상을 추구하는 자, 모두 옳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다른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바꾸기 위한 수식... - N
이상과 진실. 이 두 테마는 게임 내에서 N이 계속해서 언급하던 테마입니다. 그는 주인공의 친구 체렌과 벨에 대해서도 각각 "강함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자.", "모든 사람들이 강해질 수 없다는 슬픈 진실을 깨달은 자."로 표현하며 이상과 진실이 부딪히는 현실을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단순한 포켓몬과 동료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과 진실이라는 흑백 이념의 대립. 그 묵직한 주제가 게임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주제는 전설포켓몬에게서도 드러납니다. 검은색 포켓몬인 제크로무는 그 분류가 흑음(黑陰) 포켓몬. 즉, 동양 사상의 음(陰)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하얀색 포켓몬인 레시라무는 백양(白陽) 포켓몬으로, 동양 사상의 양(陽)을 의미합니다. 즉 두 포켓몬이 선택한 주인공과 N의 대립은 이상을 상징하는 제크로무와 진실을 상징하는 레시라무의 대립이며, 동시에 이는 동양사상인 음양의 조화와 같이 어느 한쪽이 옳은 것 없이 둘 모두가 조화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앞에서 나온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포켓몬스터 블랙에는 왜 하얀 레시라무가 동료가 되고, 화이트에서는 검은 제크로무가 동료가 되는가? 이는 우리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본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는 N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고, 그렇기에 그는 블랙에서 제크로무를, 화이트에서 레시라무를 동료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N은 스토리 내내 포켓몬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상과 몬스터볼이 있어서 포켓몬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그 사이에서 조화라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이 주제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화두를 던져줍니다. 특히 갈라치기나 편 가르기 같이 정치적/사회적 의견을 쉽게 공유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요즘 시대에서는 말이죠. 오징어게임 2편에서도 다루었듯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하기 힘든 선택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상과 진실, 둘 사이에서의 선택. 그리고 그 둘의 조화는 어떻게 이루어나가야 할까요?
아쉽게도 포켓몬스터 시리즈 중에서 나머지 작품들은 스토리적으로 블랙&화이트처럼 뛰어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는 당시 프로듀서가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포켓몬스터"라는 콘셉트로 만든 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니까요. 거기에 최근에 나오는 포켓몬 게임들은 그래픽이나 게임성에서 다른 게임들이 발전하는 것보다 뒤처졌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그럼에도 포켓몬스터 게임 중에서는 애니메이션보다도 재밌었고, 몇 배는 깊은 스토리를 가진 작품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포켓몬에 대해서 여러분이 인상깊었던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