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은 참으로 어렵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부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특히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가 자녀 양육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이는 이들이 부모로서 자격이 부족하거나 역할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부모들보다 내적, 외적 자극을 더 많이, 매우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자신의 민감하고 예민한 특성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난처한 경우 또한 많다. 이 부모들은 민감함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의 미세한 변화도 잘 알아차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적절히 준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가 청소년기 아이들과 갈등이 적고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도 이들이 가진 민감성과 예민함의 도움이 크다.
반면에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의 특성이 자녀를 과잉보호하거나 민감하고 예민한 자녀의 민감성과 예민성을 수용하지 못하며 아이를 바꾸려 하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의 부모는 자신의 민감하고 예민한 특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부정할 때 나타나는 태도이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자녀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너무나도 잘 이해한다. 너무 잘 알기에 아이가 힘들어할 수 있는 자극들을 미리 차단해버리려고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양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불편한 의자, 선생님의 높은 목소리, 집과 다른 화장실 변기, 입에 맞지 않는 급식 등 민감하고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여기에 더해 친구들을 빨리 사귀지 못하거나, 선생님께 혼이라도 나는 날이면 민감하고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한계를 넘어서는 자극이 될 수 있다. 학교를 마치고 부모를 만나게 되면 아이는 하루 동안 힘들었지만, 꾹 참아왔던 어려움을 짜증과 울음으로 표현한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즉각적으로 아이가 경험하는 스트레스를 감지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이의 나이에 겪었던 힘들었던 경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한다. 아이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부모의 불안이 올라가면서 잘 유지했던 침착성과 이성적 판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적절한 방법으로 다루어본 경험이 없는 부모는 자신의 불안만으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때 아이가 명확한 해결책을 말한다. “나 학교 가기 싫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불안해진다. 하지만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이에게 안 된다고 말했지만, 내면에서는 부모 자신만 아는 갈등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학교에 억지로 가게 하는 게 맞을까.’ 그 순간 아이는 귀신같이 부모의 갈등을 알아차린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피하면 더는 힘들지도 해결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도 학교만 안가면 자신이 겪는 문제를 더이상 겪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했던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신호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부모를 더욱 자극하고 원하는 걸 얻어낸다. 이는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민감하고 예민함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민감하고 예민한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같이 민감하고 예민하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겪을 일들을 예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대처 방법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들을 선택하게 되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부모는 아이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게 되고, 부모가 준비한 반응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부모 자신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대응은 사실 모든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방법이자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