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상담사가 자격증 취득을 위해 받아야 할 수련 과정 중 하나인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집단상담은 참여한 경험이 있었고 수련 마지막 집단상담이라 나름 유명하고 참여 후기가 감동에 가까운 집단지도자가 이끄는 집단을 신청하였다. 집단상담은 대개 6명에서 10명 정도가 모이는데 일반적이다. 기억하기로는 내가 신청한 집단은 8명 정도였던 기억된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나와 같이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련 과정이었고 1명만이 일반인 참여자였다.
집단지도자의 많은 지도자 경험과 오랜 경력이 호기심과 기대하게 하였다. 오랜 경력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인상은 좀 무섭기도 어렵기도 했었다.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다소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처음 시작을 지도자 자신을 오픈하는 건 인상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교과서적인 시작이었지만 그때는 여하튼 인상적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이틀에 걸쳐 15시간 동안 진행되는 집단상담이었지만, 이전의 집단상담 경험으로 예상하였기에 15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름대로 기대하고 과정을 예상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집단상담이 진행되면서 좀 의외였던 건, 진행방식이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집단원들과 지도자가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다소 낯설었다. 한 사람에게 2시간 정도 할애를 하면서 진행되었는데 처음엔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같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되자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지루해지면서 집단상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당황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는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 사람에게 피드백해 주는 시간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상대에게 맞추어 이야기할 것을 요구받았을 때부터이다. 피드백해 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느낀 나만의 느낌과 생각을 말하면 옳지 않다는 지도자의 피드백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지도자의 피드백을 들으면 뭐가 잘못된 건지 사실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때는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집단상담의 첫날이 끝나고 둘째 날에도 집단상담은 첫날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집단상담에서 내가 제일 마지막 대상이 되었다. 내 차례라는 지도자의 말에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이 채 2시간도 되지 않았다. 순간 시간적 압박으로 조바심이 났다. 미처 몰랐지만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해결이 안 되어 마음이 심란하니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마음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 그러자 지도자는 자기 이야기를 잘하길래 할 말이 무척 많을 줄 알고 기대를 많이 했다고 말하였다. 그 순간 낯이 뜨거워지면서 당황스러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식은땀이 났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최근에 동료와 있었던 갈등으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사소한 일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꽤 반복되는 관계 문제이자 최근의 이슈였기에 말한 거였다. 누구에게도 솔직히 말하지 못했던 걸 이 자리에서 했던 건 전부 모르는 사람이고 다시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유가 안심되었다. 그리고 상담사가 대부분이었기에 반복되는 이슈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의 이야기에 집단원들이 다양한 피드백을 해 줬던 것 같은데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던 이유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던 집단지도자의 피드백 때문이었다. 집단 지도자는 내가 겪는 갈등을 상당히 미성숙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는지 큰일이라는 말을 덧붙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이 비수처럼 날아왔다. 강렬하게 느껴져 다른 피드백들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아니 뭐 그 정도까지!’라는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아마 그때 나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을 것이라 돌이켜 보면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 이후에 지도자는 긍정적인 피드백도 했던 것 같긴 한데 이미 멘탈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지금에서야 너덜너덜해졌다는 표현을 쓰는 거지 그때 당시에는 그 조차도 인식 못 하고 큰일 났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미성숙한 내가 엄마로서 얼마나 부족했는지, 내 아이들은 어땠을까? 미성숙한 내가 상담을 해도 될까? 하는 의문과 자책이 들면서 의기소침해지고, 좌절하였다. 저렇게 경력과 연륜이 많은 상담사가 하는 말이니 맞는 거라고,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걸 단박에 알아본 거라며 나에 대한 평가를 진리인 양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꽤 의기소침해졌었다.
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외면했다. 하지만 불쑥불쑥 그날의 경험은 침범해 들어왔고 그때마다 같은 강도의 고통이 느껴졌다. 왜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다시 살펴보지 않고 제쳐두었다가 이제야 비로소 이 글을 통해 다시 살펴보고 있다. 글을 시작할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의 기억이 이제는 알 것 같다. 집단에서 지도자의 말에 나는 지독한 수치심을 느꼈다는 걸.
지독한 수치심을 경험했지만, 얼른 밀쳐버리고 나를 탓했다. 내가 부족하니까 듣는 말이고 지도자의 말이 옳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의 수치심을 외면하고 집단지도자에 대한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나에게 수치심은 아버지와 연결된다. 아버지가 했던 말에서 느꼈던 지독한 수치심을 무시하려고 나는 나를 무가치한 인간으로 규정했다. 아버지에게 향해야 했던 분노를 용납할 수 없어 갈 길 없는 분노를 나에게 돌렸다. 몇 년 전의 집단상담이 과거의 수치심을 낚아채 내 앞에 던져놓았다. 하지만 오래전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몇 년 전의 나도 여전히 내 앞에 던져진 수치심을 외면했다. 나의 외면에도 수치심은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내 앞에 던져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봐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기억은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명제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