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체를 상상하는 연습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by bnnapudding


일본 드라마 <언내추럴>을 통해 법의학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시체를 부검하는 일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도, 그것이 재판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과정도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삶만큼 죽음이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이미 죽어버린 생명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벗어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소멸된 존재에게 이유나 가치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단정 지은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강조하듯이 죽음을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이 우리 삶에는 꼭 필요하다.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고 끝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삶을 끊어내지 못하고 죽는 순간까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순리에 매몰된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해결되지 않을 슬픔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


법의학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한 뒤에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사례로 책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다. 범죄와 관련된 죽음부터 안락사라는 현대의 새로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든다. 끝으로는 우리 모두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지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 법의학에 대한 내용은 매우 짧다. 내가 기대했던 건 부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였다. 부검실에서 일어나는 상세한 일화가 궁금했다. 시체는 어떻게 운반되고 어떠한 약품과 도구가 쓰일까. 죽음을 맞은 이의 몸은 어떤 상태인가. 법의학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익숙함일까 익숙해지지 않는 안타까움일까. 개별적이고 다양한 죽음을 조명함으로써 죽음이라는 포괄적인 주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음의 순간이 아닌 이미 식어버린 사람의 몸. 시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게 된다면 독자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틈이 마련되지 않았을까. 그 점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이건 내가 죽음에 대해 비교적 많은 상상을 하고 살아서 남는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자살이나 사고사로 인한 내 삶의 끝을 상상하고,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떠올린다. 그들은 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느 정도의 깊이로 상처가 남을까. 그 고통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작가가 책에서 말했듯이 내가 시체가 된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면 현재의 삶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치열하게 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죽음이 너무 막연해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울림을 남길지도 모른다.


죽음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 있다. 매 순간 죽을 생각만 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시간을 날려버리자는 게 아니다. 인간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세상에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다. 우리는 그 풍요로움을 언젠가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끝을 스스로 설정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안락사와 자살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은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고 안락사를 원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실은 죽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회의 편견은 솔직해질 기회를 박탈한다. 죽고 싶은 마음에 대해, 동시에 간절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대해 솔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의 삶은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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