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처럼 터지는 우리의 말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by bnnapudding


새벽 사이 내면을 휩쓴 감정은 언어화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혹여 다른 가족들에게 들킬까 봐 소리 없이 울고 죽음을 향한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고점과 저점을 파도처럼 넘나들며 시간은 잘만 흐르고 다음 날이 찾아온다. 그래 어젯밤에는 유독 괴로웠지. 내겐 가족이 있고 오래된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자살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납득 가능한 과정을 거쳐 그렇게까지 어렵고 어두운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가해자로서의 나를 누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까.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잡념으로 이어진다. 모든 고민의 본질을 가린다. 그렇게 될 때 당사자는 위험해진다.


책을 읽고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경험을 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여성의 우울증에 집중하여 그들이 느끼는 우울증을 환자 개인의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되고 사회적인 이유를 다 같이 고민해야 된다고 말한다. 여성의 우울증은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며 의학적으로 병을 규정했다고 해서 그의 증상이 전부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울에는 개개인의 복잡한 배경들이 얽혀있다. 작가는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요소를 말로써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인터뷰이들은 ‘아팠기에, 남들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경험’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의사에게 들었던 차가운 말, 가정폭력, 가난, 연인과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환자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였다. 동질감은 사람을 일으키고 용기를 갖게 만든다. 이 넓은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은 누군가의 자살을 막는다. 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너무 뻔하고 비전문적인 해결책 같아 보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외로움 때문에 죽지 않았으면 한다. 듣고 싶지 않아도 터지는 목소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찰도 놓치지 않았다. 돌봄 노동의 한계와 중요성을 언급한다. 자살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없다. 일상적인 돌봄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나 현존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 어떤 대상을 향해 ‘가장 잘못하고 있는 건 너야’라며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사회의 많은 공백을 조명한다. 우울과 모든 정신질환 문제는 비가시화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일단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 본인도 조울증을 진단받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 염려 가득한 태도가 문장에 녹아 있었다. 하지만 독자는 이 책으로부터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단지 책 속에 등장하는 몇 명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이다. 연민의 감정은 쉽게 차올랐다가 눈에서 사라지면 전부 흩어져 버린다. 개인적으로 책을 다 읽고 한편으로는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사람들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몰라서 떠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들 자신과 세상을 철저하게 분리시킨다면 그들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주변인들에게, 혹은 자기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스스로의 우울에 대해 기민한 감각을 발동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구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라는 것을 믿고 살기 위해서는 기대야 한다. 서로의 손을 잡은 여성들은 절대 당신을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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