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미술관에 간다. 그곳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고전 작품부터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보통 작품 옆에는 제목과 짧은 해석이 붙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활자가 말하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느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그저 겉핥기 식으로 감상을 끝내고야 마는 것이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읽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됐다. 백지 위에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과 로댕 미술관으로 챕터를 나누어 그곳에 전시된 작품을 도슨트 형식으로 설명한다.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모네와 마네는 물론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도 더러 등장한다. 다양한 사진 자료를 활용하여 주제와 종교적 함의, 기법과 정치적 탄생 배경 등을 알려주고 그것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 작품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닫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석하면 좋을지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게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는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기에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물론 이러한 말에는 오류가 있다. 미술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처럼 사람들이 숨기려고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풍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 범주 안에 속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퇴색될 수는 없다. 로댕의 「지옥문」처럼 미술이 문학과 연관되기도 하고, 철학 혹은 음악과 연관되기도 한다. 예술은 예술과 연합하고 확장된다. 그 현상을 주의 깊게 감상하고 나름의 해석을 도출하는 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시야가 넓어지고 가치관이 변화한다. 말하자면 인생의 확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성만이 중시되는 사회가 얼마나 참혹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포용과 평화를 주장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고 힘의 논리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국가, 끝이 안 보이는 젠더 갈등,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장애인들. 미술 작품에 대한 평가는 동등한 무게를 가진다. 누구나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가 있다. 왜 우리는 현실에서 타인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런 실정인데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예술이라며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오히려 개개인의 의견에 관대하고 존중이 바탕이 되는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혐오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 이전에 예술 교육일지도 모른다. 일단 알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을 구태여 부정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네의 「수련 대장식화」를 후반부에 배치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꽃 때문에 화가를 선택했다는 그의 마음이 작품에 묻어났다. 수련에 대한 사랑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 말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모네의 그림 앞에서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들의 감정이고, 그들의 감정 역시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술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화합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을 홀리는 마법과도 같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라는 이름의 초대장이 또 도착한다면 기꺼이 수락하도록 만든다. 그림은 가만히 걸려있고 감상하는 이들만 바쁘게 질문을 쏟아낸다. 예술을 흉내 내는 그 몸짓이 우리에게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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