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다정해야 한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우리 스스로 친절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렇게 뒤따르는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제시하는 책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였다. 하나의 감정적 선택 사항으로 느껴졌던 다정이란 단어를 깊이 파고든다. 협력적이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다정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21세기임에도 숱한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사람이 사람을 학살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따뜻한 경고가 내려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당연하게 살아남고 싶다면 서로 배려해야 한다. 책이 웃으며 건네는 손을 독자가 맞잡을 때 현대의 주요 과제인 ‘살아남기’에 대한 길이 열린다.
늑대는 자기가축화를 통해 살아남은 대표적인 동물이다. 목숨을 내놓고 야생성을 지속시키는 대신 인간의 주위로 몰려들어 안전과 안락함을 보장받은 것이다. 인간 역시 스스로 자기가축화를 선택했을 수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살아남기에 용이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집단을 비인간화 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혐오하는 현상이 자기가축화 때문에 나타난다. 이런 설명은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더 해줬다. 우리는 왜 같은 인간종을 죽이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고 비슷한 외형을 가진 이에게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한 언행을 서슴지 않는가. 그들이 단지 ‘나쁜 사람’이라는 설명으로는 전혀 와닿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타집단을 배제하면서도 그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인간이 가장 똑똑하고 위대하다면서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마저 저버린다면 기술과 혁신이 다 무슨 소용일까. 결국엔 그것들을 누릴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알면 사랑하게 된다.' 미움이라는 감정을 잠시 덜어내고 대상의 있는 그대로를 본다면 어떨까. 물론 타집단에 대한 접촉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적으로 거의 비슷하고, 새로운 존재에게 보노보가 인간보다 더 관용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떨까. 인간 외의 생물에 먼저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런 뒤에 엄격한 잣대로 구분해놓은 인간 집단을 다시 보면 잘못된 부분을 인지하게 된다. 전부 무의미한 거리 두기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제멋대로 살면 안 된다. 미워하고 싶다고 마음껏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 없는 주장에 너무 많은 이들이 동조해서도 안 된다. 몇 번이고 강조해도 부족한 부분이다. 자연법칙에는 우열이 없다. 재앙은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평화 역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더 나은 것을 취하기 위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다정이 정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무의미한 일이더라도 단 한 사람의 인생에는 유의미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끼리 따스함을 나누고 그 기억으로 신념을 지키는 것이다. 여전히 의미가 없을지라도. 하지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알려줬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 협력의 기반에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인종에 대한, 성별에 대한, 국적에 대한, 종에 대한 선을 지운다. "친하게 지내요." 안부를 묻고 친구가 된다. 공존의 장은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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