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May 28. 2023

비 오는 날

가내공상(家內空想)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한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 연휴 내내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속으로 꽤나 좋아했다.

지금도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안에 틀어 박혀 있어도 기분이 좋다.

난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단순히 '비' 뿐만은 아니다.

'전국이 흐리고 곳곳에 비 소식이 있겠다'는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는 기분을 설레게 한다.

비가 내리기 전 드리워지는 어둑한 구름과 후텁지근해지는 특유의 공기 질감이 좋다.

비가 지상과 부딪힐 때 발생하는 공명과 풋내, 그리고 그 시원한 공기가 좋다.

사각거리는 이불속을 타고 들어와 사람 마음 쓸쓸해지게 만드는 차가운 기운을 사랑한다.

맑은 날과 달리 채도와 명도가 한껏 흐려진, 은은한 풍경이 맘에 든다.

유리창과 풀잎에 고인 물방울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가 내릴 때 산허리에 걸친 운무의 모습이 장엄하다.

비 오는 날 드라이브를 할 때 들려오는 아스팔트의 촉촉한 마찰음이 신선하다.


비는 유년기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비 오는 날 국민학교 오후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무렵 우산을 듣고 교실 창가에서 손을 흔들며 날 기다리던 엄마의 얼굴이 좋았다.

비 오는 날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영종도행 여객선을 바라보던 월미도의 풍경이 그립다.

비 오는 날 물이 불어 난 충주의 어느 계곡에서 날 엎고 건너던 아빠의 등이 따뜻했다.  

비 오는 날에 맞춰 읽었던 유주현 수필 <탈고 안 될 전설>에 나오는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비의 이미지가 맘에 들었다.


비 오는 날은 나의 오감(五感)이 들뜬다.


아마도 내 삶의 빛깔은 무채색인가 보다.

맑고 쨍쨍한 사람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





 


 















작가의 이전글 자연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