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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심바 Oct 20. 2021

내 강의가 망한 4가지 이유

밤새워 준비한 강의가 효과를 못 만드는 이유를 분석해 보자.

강의를 진행해 봤거나 누군가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기억도 있겠지만 반대로 좋지 않았던 기억도 역시 있을 수 있다. 강의를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준비한 것에 비해 반응이 영 좋지 않았거나 스스로에게 부끄럽거나 아쉬운 기억이 있을 수 있다. 또 강의를 수강한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웠거나 자리에 계속 앉아있기가 불편하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망한 강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 그 이유를 안다면 나의 강의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강의가 망하는 이유 1: 수강자 분석 실패

강의가 망하는 첫번째 이유는 강의를 듣는 사람들, 수강자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이는 수강자 선정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강의나 강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사가 준비한 강의 주제와 내용, 목적에 맞지 않는 수강자들이 강의를 듣게 될 때 발생하는 문제다. 

필자는 ‘Project Management 역량 향상’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강의의 수강자라면 프로젝트 관리를 수행하고 있는 PM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PM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냥 단순히 PM이라는 업무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들었던 이 강의의 수강자들은 이 세 개의 그룹이 섞여 있었다. 강의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이 수강자 그룹들은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이해 수준에 너무 심한 차이가 있었고, 강의가 끝난 후 수강자 대상의 설문에서는 이런 말들이 나왔다.


“저는 프로젝트 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어려운 관리기법을 설명해 주셔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프로젝트 관리 기법 중 WBS나 간트차트 등의 방법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새로운 게 없었던 강의였습니다.”
“저는 지금 R&D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있는데 강의 중 다뤄준 사례들은 IT 프로젝트가 주로 나와서 저한테 잘 맞지 않고 활용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피드백을 들은 강사는 얼마나 힘이 빠질지 추측이 되는가? 해당 강의는 프로젝트 관리 역량 향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냥 프로젝트 관리와 유사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두다 수강자로 선정하고 듣게 했던 데서 그 패착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마다 다른 기대사항을 갖고 있는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수준에 큰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 누구의 기대사항에도 맞추지 못한 강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강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강의 주제에 대한 학습 수준과 강의에 대한 기대사항은 수강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대일 레슨이나 코칭이 될 수 있다.) 앞에 예로 든 강의에서는 적어도 수강 대상자에 대한 학습 수준 분석, 강의 기대치에 대한 이해가 교육 전이나 강의 초반에 이루어졌어야 하고 이에 맞춰서 강의 내용의 범위와 목적을 달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강대상자의 연령, 직급, 전공, 직무, 관심사, 규모, 성향, 상황 등에 대한 사전 분석이 이루어져야 했고, 이에 맞춰서 강의의 방향과 범위를 수강자들과 합의하면서 강의가 진행되어야 했다. (수강자 이해와 분석 방법은 이후 자세하게 다뤄볼 예정이다.)


강의가 망하는 이유 2: 부적절한 강의 콘텐츠

망한 강의의 두번째 이유는 적절하지 못한 강의 콘텐츠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다. 하지만 어떤 콘텐츠가 적절하지 못한 지를 살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적절하지 못한 콘텐츠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산으로 가는 콘텐츠다. 

이런 강의 콘텐츠는 제목과 내용이 따로 놀기 마련이다. 이것은 마치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관심을 끌어 클릭을 유도했는데 정작 본문 내용을 보면 제목을 통해 유도했던 관심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오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런 기사를 써내는 기자들을 기레기라는 말로 폄하하듯이 제목과 다른 강의 내용을 준비한 강사를 비판하는 용어도 나올 만하다. 

두번째는 너무 많고 어려운 콘텐츠다. 

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알 수 없는 용어나 어휘가 가득하다. 강사는 이런 초보적인 내용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있다. “저 강사는 전문성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강의는 영 못하는 것 같아.” 

세번째는 너무 적고 쉬운 콘텐츠다. 

한마디로 수준이 낮고 새로운 것이 없는 강의 내용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강의는 내용이 빈약하기 때문에 했던 말이 무한정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강의의 메시지가 잘 기억될 수 있도록 반복하는 것과는 다르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콘텐츠의 범위가 너무 넓거나 너무 좁은 경우다. 

필자는 강사의 일(Job)과 역할(Role)에 대해 언급할 때 종종 이런 비유를 한다. ‘강사는 지식의 쉐프다!’ 맞다. 우리는 굳이 강의를 듣지 않아도 21세기 수많은 지식과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으로부터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이 세상에 아직 없지만 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내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나름의 레시피를 구성해서(혹은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이것저것 넣고 만들어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처럼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방대한 지식과 데이터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재료들을 찾아내기 어렵고,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기에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강사들은 이 작업을 대신해 준다. 지식과 정보, 데이터가 음식 재료라고 한다면 이중 가장 필요한 핵심적인 재료들을 모아서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또 먹고 싶은 요리로 만들어낸다. 이 때 강사 특유의 레시피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 레시피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필자가 강사를 지식의 쉐프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식쉐프로서의 강사는 음식 재료를 감당하기 어렵게 손님에게 던져 놓고 알아서 먹고 소화하라고 해서는 안된다.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방법’이라는 강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방법을 강의에 다룰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강의 시간 동안 이 내용을 다 다룰 수도 없다. 수강자의 수준과 기대치, 강의가 만들어진 목적,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중요도 우선순위에 맞춰서 적당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리로서의 강의를 기다리는 수강자의 입맛과 취향, 목적에 맞게 적절한 요리 재료들을 최적의 방법으로 조리하여 수강자들이 가장 잘 음미할 수 있는 맛과 양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강의가 망하는 이유 3: 준비가 안된 강사, 당신!

망한 강의의 세번째 이유는 뼈아프게도 준비가 안된 강사, 자격 미달인 강사다. 

기원 전 아테네의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라는 학문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정리를 했다. 그 세 가지 요소는 바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인데 우리 말로 정리해 보면, 로고스는 논리, 파토스는 감성, 에토스는 인격이다. 앞에 구 요소인 논리와 감성은 설득을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 작용한다는 건지 알겠는데 이 에토스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다. 인격? 좀더 나은 이해를 위해 부연하면 이 인격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면 그 메시지가 아무리 논리적이고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해도 설득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주장을 강의에 적용해 보자.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고 무언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배우게 하여 그 배움의 내용을 실제 적용하면서 살도록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강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의를 수행하는 강의자, 강사가 그런 말을 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는 자격이 있긴 한데 듣는 사람들, 수강자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했다면? 안타깝게도 우리가 하는 강의는 시쳇말로 씨알이 안 먹히는 공허한 메아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에토스라 불리는, 그 말을 할만한 자격이 설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이다. 수강자들에게 나의 자격, 전문성 등을 인식 시키지 못하면 우리 강의의 60%는 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사로서 말할 만한 자격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그런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다른 글에서 다뤄 보려고 한다. 


강의가 망하는 이유 4: 진행방식의 문제

망한 강의, 그 네번째 이유는 잘못 선택된 진행 방식이다. 

수강자들은 그들의 연령대나 지식과 경험의 수준, 교육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나 태도, 본 강의를 듣는 이유나 목적 등에 따라 선호하는 강의 방식이 다르다. 물론 수강자들이 강의를 듣기 전에 강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메시지와 교육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강의 효과의 차이는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 향상을 위한 강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강의를 위해서 준비한 메시지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이런 스타일에 맞춰서 취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조언이나 노하우를 설명한다. 수강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 다른 방식의 소통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졸린 눈을 치켜 뜨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긴 한 거 같은데 아직도 뭘 어떻게 다르게 소통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다름에 대한 이해는 이 강의를 듣기 전에도 수강자들은 이미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방식의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만약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상의 다름을 더 잘 인식시키기 위해서 별도로 준비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진단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진단 결과에 맞춰서 평소에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지 수강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그 내용을 수강자들끼리 공유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강의 주제에 대한 수강자 본인의 수준 진단과, 진단 결과에 대한 더 강한 인식을 만드는 표현과 공유는 교육 효과를 배가 시킨다. 


강사가 준비한 강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닌 메시지에 대한 은유적 모델을 실제 체험해 보게 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한번에 여러 개의 메시지를 던지면 한 개의 메시지도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강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수강자 대표를 앞에 잠시 불러서 공을 한꺼번에 여러 개 던지고 잡아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같은 강의 내용 전달에도 더 큰 힘이 생기고 이 힘은 수강자들의 장기기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달변가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목소리가 좋더라도,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더라도 강사의 말로만 이루어지는 강의는 수강자의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연구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집중력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집중력 지속 시간은 9~15분으로 20분을 채 넘지 못한다. 말로 하는 설명에만 집중해선 수강자의 집중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붙잡을 수 없다. 강의 방식의 다양성과 효과적 사용이 필요한 이유다. 


<네 줄 요약>

1. 강의가 망하는 이유는 잘못된 수강자 분석, 부적절한 콘텐츠, 준비가 안된 강사(강의스킬), 강의 방식이다.

2. 수강자의 수준과 기대사항에 맞춰서 콘텐츠의 범위와 깊이를 정해야 한다. 

3. 강사 당신 자체가 설득력 있는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4. 강의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별짓을 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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