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의 시대
지난 십수 년간 예술과 기술의 관계는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갔다. 한쪽에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라는 낙관주의가, 다른 한쪽에는 "기술이 인간성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디스토피아적 경고가 있었다. 그런데 2025년, 이 진자 운동이 멈췄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거대한 실존적 질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의 인프라로 침전되면서, 예술계와 학계는 더 이상 기술의 신기함에 매혹되거나 단순한 공포를 느끼는 단계를 넘어섰다. 대신,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흐름 앞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패닉'의 감각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패닉을 타개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영성, 양자역학, 미시 생태계, 토착 지식—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재마법화(Re-enchantment)'가 시작된 것이다.
매년 9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1979년부터 이어져 온 세계 최대의 미디어 아트 축제다. 올해 이 축제가 던진 주제는 놀라울 정도로 직관적이었다. "PANIC – yes/no" [1], [2].
예술감독 게르프리트 스토커는 이 패닉이 단순한 공포 반응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감각이라는 것이다 [1]. 기후 위기, AI의 폭발적 성장, 민주주의의 위기—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이 되어버린 상황.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이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자고 제안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패닉'이 마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행동을 촉발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축제 기간 동안 린츠 전역에서 펼쳐진 전시, 퍼포먼스, 심포지엄은 위기를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가능성을 찾는 작업들로 가득했다.
올해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의 수상작들은 2025년의 시대정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Requiem for an Exit"—토마스 크밤(Thomas Kvam)과 프로데 올데레이드(Frode Oldereid)의 이 작품은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 골든 니카를 수상했다 [6]. 4미터 높이의 거대한 강철 외골격. 그 안에 갇힌 고독한 머리. AI가 생성한 바리톤 음성이 혼돈과 고통, 실존적 절망을 낭독한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기술적 숭고함(Technological Sublime)'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 감금 상태'다. 우리는 기술에 의해 증폭되고, 동시에 기술에 의해 갇혀 있다. 출구를 위한 진혼곡—제목 자체가 2025년의 정서를 대변한다.
"Fugue"—아넷 산드라 아츠크괴즈(Anet Sandra Açıkgöz)의 비디오 설치 작품은 '도망(Escape)'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와 음악적 형식인 '푸가'를 결합했다 [7]. 피구(Dodgeball) 게임을 통해 집단적 트라우마와 책임 회피의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게임의 규칙으로 환원한다. 공을 피하고, 던지고, 맞는 행위. 이것이 우리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의 은유다.
우마르 상호(Oumar Sangho)의 도예 작업—말리 출신의 이 예술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7]. 디지털 기술의 홍수 속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가장 원초적인 재료인 '점토'였다. 손으로 빚은 도자기를 통해 기억의 소거에 저항하는 그의 작업은, 하이테크 시대에 로우테크(Low-tech)나 전통 기술이 오히려 급진적인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세 작품은 패닉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을 보여준다. 감금 상태의 인식, 도피의 역학, 그리고 가장 오래된 기술로의 회귀. 어느 것도 패닉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모두 패닉을 생산적인 것으로 변환시킨다.
컴퓨터 그래픽스와 인터랙티브 기술의 최대 학회인 SIGGRAPH는 올해 두 개의 대륙에서 서로 다른 화두를 던졌다.
홍콩에서 열린 SIGGRAPH Asia 2025의 아트 갤러리 테마는 "Generative Futures: Continuous Becoming"이었다 [8]. '끊임없이 생성되는 미래'—이 제목은 예술이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유기체적 시스템임을 천명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 선언을 구체화했다. 로봇 팔이 실시간으로 출력하는 조각, 관객의 반응에 따라 변이하는 XR 환경, 스스로 코드를 다시 쓰는 온체인(On-chain) 예술 [8]. 이 작품들에서 예술가는 더 이상 최종 결과물의 창조자가 아니다.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그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변이의 첫 번째 관객일 뿐이다.
밴쿠버에서 열린 SIGGRAPH 2025는 "Connecting Nature"를 주제로 삼았다 [10].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어니스트 에드먼즈(Ernest Edmonds)의 "Quantum Tango"다 [9]. 이 작품은 밴쿠버, 런던, 밀라노, 파도바—네 개 도시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각 도시의 참여자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데이터가 하나의 작품으로 엮인다.
이것은 생성형 시스템이 개별 단말기에 고립되지 않고, 행성적 차원의 집단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으로 진화했음을 입증한다.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자율적 행위자'로 진화하고 있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AI가 예술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예술의 행위자성(Agency)이란 무엇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