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기술
서구의 기술 합리주의가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분열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반성이 깊어지고 있다. 더 빠른 컴퓨터, 더 정교한 알고리즘, 더 방대한 데이터—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2025년 예술계가 비가시적인 세계로 눈을 돌린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다.
제13회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강령술: 영혼의 기술(Séance: Technology of the Spirit)"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를 내걸었다 [3].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 할리 에이어스(Hallie Ayres), 루카스 브라시스키스(Lukas Brasiskis)로 구성된 큐레토리얼 팀의 선택이다 [11].
언뜻 들으면 미신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제목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미디어 기술은 본질적으로 '부재하는 것을 현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화기는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사진은 지나간 순간을 현재로 소환한다. 영화는 죽은 배우를 스크린 위에 되살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에 전신(Telegraph)과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심령술이 유행했다 [11]. 보이지 않는 전파가 먼 곳의 소식을 전해준다면, 죽은 자의 영혼과도 교신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신 기술과 영매의 능력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2025년의 AI와 데이터 기술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수십억 개의 텍스트를 학습해 마치 죽은 작가의 문체를 복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딥페이크 기술은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재현한다. 데이터 마이닝은 잊혀진 역사의 트라우마를 발굴해 가시화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강령술이다.
큐레이터들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Instrument)가 아닌, 다른 차원과 접속하는 '제의적 매체(Ritualistic Medium)'로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적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다.
같은 시기 서울에서 열린 ISEA 2025(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 Art)는 "Trans-worlding(초월적 세계관)"을 주제로 삼았다 [12]. 포스트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이다.
ISEA 2025는 특히 백남준의 비전을 계승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서양, 물질과 정신, 기술과 인간—이러한 이분법을 해체하고, 우연성과 자발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리는 것. 백남준이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바로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The Legend Map: Seoul" 프로젝트다 [13].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서울 시민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시각화한 이 프로젝트는, 도시 공간 자체를 거대한 집단 기억의 저장소이자 영적인 지도로 변환시켰다.
특정 거리를 걸으면 그곳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AR로 펼쳐진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 누군가의 첫사랑이 시작된 카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광장.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의 지층이다. 기술은 그 지층을 가시화하는 도구가 된다.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Turbine Hall).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공간 중 하나다. 매년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은 이 거대한 공간을 채울 작가를 선정한다.
2025년의 선택은 의외였다. 최첨단 디지털 아트가 아니라, 사미(Sámi)족 작가 마렛 안네 사라(Máret Ánne Sara)의 거대한 조각 설치 "Goavve-Geabbil"이었다 [4], [5].
사미족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북부에 걸쳐 살아온 북유럽의 원주민이다. 수천 년간 순록을 기르며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축적해왔다. 사라의 작품은 서구의 과학 기술 대신, 이 토착 지식(Indigenous Knowledge)을 통해 기후 위기와 생태적 단절을 바라본다.
이것은 단순한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테이트가 '기술'의 정의 자체를 재고하고 있다는 신호다. 기술이란 반드시 반도체와 알고리즘이어야 할까? 자연과 공존하며 축적된 오래된 지혜,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법,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것 역시 하나의 기술 아닐까?
최첨단 기술 예술의 전당이 '오래된 지혜'에 주목한다는 것. 이것이 2025년의 역설이자, 어쩌면 가장 첨단의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