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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학×기술 2025 결산과 2026 전망-4부

감각의 재편과 시장의 역설

by 배준형Joonhyung Bae


체화된 듣기: 소리를 온몸으로


2025년의 전시들은 또 다른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눈 중심의 예술 경험을 거부하고, 온몸으로 느끼는 공감각적 체험으로 이동한 것이다.

런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의 "Frequencies: The Sounds That Shape Us" 시리즈는 이 전환을 잘 보여준다. 특히 "Feel the Sound" 전시는 '체화된 듣기(Embodied Listening)'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28], [29].

소리는 단순히 귀로 듣는 파동이 아니다. 저주파 음은 내장을 울리고, 고주파 음은 피부를 간지럽힌다. 음악은 심박수를 변화시키고, 특정 주파수는 감정을 조절한다. "Feel the Sound"는 이런 소리의 물리적, 신체적 차원을 탐구한다.

방문객들은 특수 제작된 공간에서 소리를 '입는' 경험을 한다. 바닥과 벽, 의자가 진동하고, 3D 오디오가 공간을 감싸며, 햅틱(촉각) 장치가 피부에 음악을 전달한다. 가상현실(VR)이 시각적 몰입을 추구했다면, 이것은 '전신적 몰입(Full-body Immersion)'이다.


게임의 예술화와 보편적 접근성


독일 카를스루에의 ZKM(예술 미디어 센터)은 올해 "zkm_gameplay" 상설 전시를 오픈했다 [31]. 비디오 게임을 예술 장르로 격상시키는 이 전시는, 동시에 접근성(Accessibility)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게임은 태생적으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다. 관객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있고, 감상이 아니라 참여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특정한 신체 능력을 전제로 설계된다. 컨트롤러를 잡을 수 있는 손, 화면을 볼 수 있는 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zkm_gameplay"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전시한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기반 게임, 청각 장애인을 위한 시각화된 사운드 시스템, 신체 장애인을 위한 적응형 컨트롤러.

이것은 기술이 신체적 제약을 넘어서는 '보철적 미학(Prosthetic Aesthetics)'의 실현이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한다면, 그 확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접근성은 더 이상 부가적인 기능이 아니라, 디자인의 핵심 원칙이 되어야 한다.


데이터 주권의 문제: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가


생성형 AI의 범용화는 예술계에 새로운 쟁점을 던졌다. AI 모델은 인터넷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 데이터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동의 없이, 보상 없이.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는 '미래 예술 생태계(Future Art Ecosystems)' 보고서와 전시를 통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32]. 특히 '데이터 신탁(Data Trust)' 모델이 주목받았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사용되는 방식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홀리 헌던(Holly Herndon)과 매트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는 이 분야의 선구자다. 그들의 전시 "The Call"은 집단적 거버넌스(Collective Governance)가 어떻게 예술적 실천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33]. 예술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데이터 사용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AI 기업들과 협상하며, 수익을 공유하는 시스템.

이것은 단순한 저작권 문제를 넘어선다. AI 시대에 '창작'이란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학습한 AI가 생성한 그림은 누구의 것인가?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모든 예술가들의 것인가,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의 것인가, AI 기업의 것인가?

명쾌한 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예술적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온 것, 그것이 2025년 서펜타인의 성과다.


역설: 기술 피로감과 자연으로의 회귀


흥미롭게도, 학계와 비엔날레가 첨단 기술의 철학적 함의를 파고드는 동안, 대중적인 아트 마켓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관측되었다.

2025년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분석한 여러 보고서들은 공통적으로 "코지 미니멀리즘(Cozy Minimalism)"과 "바이오필릭 아트(Biophilic Art)"를 꼽았다 [34], [35]. 대중은 노골적인 기술 미학—번쩍이는 LED, 차가운 금속, 디스플레이 화면—보다는, 기술이 배후로 물러나고 자연 소재와 따뜻한 질감이 강조되는 '치유적 환경'을 갈망하고 있다.

나무와 돌, 식물과 물,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광. 사람들은 집과 사무실, 공공 공간에서 자연을 원한다. 이것은 기술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역설적인 진화다. 기술은 더욱 고도화되지만, 그 인터페이스는 더욱 자연 친화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게 변모한다.

우리는 이것을 '기술의 은폐'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장 발전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이다.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지만 의식되지 않는 것. 2025년의 대중은 이미 이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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