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2026년?
2025년이 기술적 충격에 대한 '패닉'을 직시하고, 이를 영성이나 자연과의 재결합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성찰'의 해였다면, 2026년은 이러한 성찰을 구체적인 시스템과 행동 강령으로 구현하는 '실천'의 해가 되어야 한다. 2025년의 각 현장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따라가며, 2026년에 부상할 핵심 의제들을 예측해본다.
2025년의 인사이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패닉을 마비가 아닌 행동의 촉매로 재해석했다 [1]. 토마스 크밤의 "Requiem for an Exit"는 기술적 감금 상태를 드러냈고 [6], 우마르 상호는 점토라는 가장 오래된 재료로 디지털 홍수에 저항했다 [7].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이 '생산적 패닉'이 일회성 주제가 아닌, 창작 방법론으로 제도화될 것이다.
첫째, '위기 반응형 큐레이팅(Crisis-Responsive Curating)'의 등장이다. 전시 기획이 2-3년 전에 확정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 진행 중인 위기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유연한 프로그래밍이 표준이 될 것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PANIC"이라는 직관적 주제로 시대정신을 포착한 것처럼, 2026년의 주요 축제들은 더욱 민첩하게 현실에 대응할 것이다.
둘째, 로우테크 저항의 확산이다. 우마르 상호의 도예 작업이 보여준 것처럼, 하이테크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통 기술과 수공예가 '급진적 실천'으로 재평가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기술적 가속에 대한 의식적인 감속(Deceleration)의 미학이다. 2026년에는 '슬로우 미디어 아트(Slow Media Art)' 운동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2025년의 인사이트: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미디어 기술의 본질이 '부재하는 것을 현존하게 만드는 것'임을 역설했다 [3], [11]. 19세기 전신 발명과 심령술의 유행이 궤를 같이했듯, 2025년의 AI는 현대판 강령술로 기능하고 있다.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이 '영매적 기술'이 더욱 체계화되고 윤리적 프레임워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첫째, '디지털 사후 존재(Digital Afterlife)'에 대한 가이드라인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AI가 고인의 목소리와 문체를 복원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은 자를 어디까지 불러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시급해진다. 유족의 동의, 고인의 사전 의사, 복원된 존재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한 논의가 예술계에서 먼저 시작될 것이다.
둘째, 집단 기억의 예술적 아카이빙이 확산될 것이다. ISEA 2025의 "The Legend Map: Seoul"이 도시 공간에 시민들의 기억을 AR로 덧입힌 것처럼 [13], 2026년에는 더 많은 도시들이 자신만의 '기억 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다. 잊혀진 역사, 소수자의 서사, 트라우마적 사건들이 기술을 통해 가시화되는 작업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동양적 세계관의 재부상이다. ISEA 2025가 백남준의 비전을 계승하며 동서양의 이분법 해체를 시도한 것처럼 [12], 2026년에는 서구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기술 철학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불교의 연기론, 도가의 무위자연, 샤머니즘의 세계관 등이 AI 시대의 새로운 사유 틀로 탐구될 것이다.
2025년의 인사이트: 테이트 모던은 사미족 작가 마렛 안네 사라를 통해 토착 지식(Indigenous Knowledge)을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세웠다 [4], [5]. 이것은 서구 기술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서 '토착 과학(Indigenous Science)'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토착 지식이 예술계의 '특별한 사례'에서 '핵심 참조점'으로 격상될 것이다.
첫째,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큐레이팅 기준 변화다. 테이트가 터빈 홀이라는 가장 권위 있는 공간에 토착 예술가를 초대한 것은 신호탄이었다. 2026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도쿠멘타 등 주요 행사들이 토착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필수 조건으로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
둘째, 기후 적응 솔루션으로서의 토착 기술 재평가다. 수천 년간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원주민 커뮤니티들의 지혜—물 관리, 불 관리, 생태계 보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현대 기술과 결합되는 프로젝트들이 증가할 것이다. 예술은 이 융합의 실험장이자 전파자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미술사 서사의 탈식민화 가속이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가 '보편적 예술사'로 가르쳐지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26년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원주민의 미학적 전통이 동등한 위상으로 다뤄지는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가 늘어날 것이다.
2025년의 인사이트: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Intelligens"를 주제로 자연 지능(곰팡이 네트워크, 식물 뿌리 시스템)과 인공 지능의 결합을 탐구했다 [14]. 바레인 국가관의 "Sweating Assets"는 냉방 시스템의 응축수를 생태학적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했다 [15], [16].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이러한 실험들이 실제 도시 인프라로 구현되기 시작할 것이다.
첫째, '리빙 랩' 도시의 확산이다. 베니스가 비엔날레 기간 동안 도시 전체를 실험실로 변모시킨 것처럼 [14], 2026년에는 더 많은 도시들이 자연-인공 지능 융합 시스템의 테스트베드로 자처할 것이다. 싱가포르,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같은 '스마트 시티' 선도 도시들이 이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적정 기술 예술(Appropriate Tech Art)'의 부상이다. 바레인 파빌리온이 보여준 것은 화려한 하이테크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의 부산물을 활용하는 영리한 솔루션이었다. 2026년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는 '적정 기술' 철학이 미디어 아트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다. 전시 기획 단계에서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고, 에너지 효율이 작품 평가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셋째, 바이오 아트의 실용화다. 안나 베르시니나 같은 작가들이 보여준 미생물 정원과 균사체 건축 자재 실험 [17], [18]이 2026년에는 실제 건축 프로젝트와 도시 농업에 적용되기 시작할 것이다. 예술이 과학적 가설을 '시뮬레이션'하는 역할에서, 실제 '프로토타입'을 제공하는 역할로 진화하는 것이다.
2025년의 인사이트: SIGGRAPH Asia의 "Generative Futures: Continuous Becoming"은 AI가 도구를 넘어 '자율적 행위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8]. 스스로 코드를 다시 쓰는 온체인 예술, 관객 반응에 따라 변이하는 XR 환경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립적인 생명력을 획득했음을 보여주었다.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이 '자율적 예술 시스템'의 법적, 윤리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첫째, '생성형 예술의 저작권' 논쟁 심화다. AI가 스스로 진화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은 누구의 것인가? 초기 알고리즘을 설계한 프로그래머의 것인가,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예술가들의 것인가, AI 기업의 것인가, 아니면 AI 자체의 것인가? 2026년에는 이 질문에 대한 법적 판례와 업계 가이드라인이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서펜타인 갤러리가 제안한 '데이터 신탁(Data Trust)' 모델의 구체화다 [32], [33]. 홀리 헌던과 매트 드라이허스트가 "The Call"에서 보여준 집단적 거버넌스 실험이 2026년에는 더 많은 예술가 커뮤니티로 확산될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사용되는 방식을 통제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모델이 시험될 것이다.
셋째, '연결의 미학'에서 '얽힘의 윤리'로다. "Quantum Tango"가 네 개 도시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보여준 것 [9]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분리된 존재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얽히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었다. 2026년에는 이 '얽힘'의 철학이 윤리적 프레임워크로 발전할 것이다. 내 창작물이 타자—데이터 제공자, 협업자, 환경, 비인간 행위자—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명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상호 의존적 창작 라이선스'가 논의될 수 있다.
2025년의 인사이트: 바비칸 센터의 "Feel the Sound"는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체화된 듣기'를 제안했다 [28], [29]. ZKM의 "zkm_gameplay"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전시의 핵심으로 삼았다 [31].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전신적 몰입(Full-body Immersion)'과 '보편적 접근성(Universal Accessibility)'이 전시 기획의 선택이 아닌 필수 기준이 될 것이다.
첫째, 시각 중심주의의 본격적 해체다. VR이 시각적 몰입에 집중했다면, 2026년의 몰입형 경험은 햅틱(촉각), 후각, 미각, 고유수용감각(자기 몸의 위치를 느끼는 감각)까지 포괄할 것이다. "Feel the Sound"가 선보인 진동 바닥, 3D 오디오, 촉각 장치의 결합이 새로운 전시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둘째, '보철적 미학(Prosthetic Aesthetics)'의 확산이다. ZKM이 접근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처럼, 2026년에는 더 많은 기관들이 장애를 '극복해야 할 한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경험'으로 재정의할 것이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오디오 기반 예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시각화된 음악, 이동 장애인을 위한 원격 현전 기술—이것들이 '특수한 배려'가 아닌 '보편적 디자인'으로 통합될 것이다.
셋째,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의 실용화다. 레오나르도 저널이 주목한 것처럼 [36], 예술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2026년에는 이 연구가 실제 전시 설계에 적용되기 시작할 것이다. 특정 시각 패턴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특정 사운드스케이프가 집중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공공 공간 디자인과 미술관 건축에 반영될 것이다.
2025년의 인사이트: 사이언스 갤러리 런던의 "Quantum Untangled"는 양자 중첩과 얽힘 같은 비직관적 물리 현상을 예술적으로 시각화했다 [19]. "Quantum Tango"는 양자적 연결성을 글로벌 네트워크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9]. 오사카 엑스포의 토사 나오코 "Sound of Ikebana" [21]와 나타샤 차코스의 "Paraboles" [22], [23]는 무중력이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예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었다.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양자역학과 우주 공간이 예술의 새로운 미학적 토대가 될 것이다.
첫째, 결정론에서 확률론으로의 미학적 전환이다. 고전 예술은 완성된 순간 고정된다. 작가가 의도한 형태, 의미, 경험이 있고, 관객은 그것을 수용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세계관에서는 관측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2026년에는 "관객이 보기 전까지 작품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탐구될 것이다.
둘째, 포물선 비행 예술 레지던시의 등장이다. 현재 무중력 체험은 NASA나 ESA의 연구 프로그램, 혹은 부유층의 우주 관광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민간 우주 산업의 성장과 함께, 2026년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포물선 비행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중력의 미학적 재발견이다. 역설적으로, 무중력 예술은 우리에게 중력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지구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위아래의 구분, 낙하의 법칙, 신체의 무게감—이 모든 것이 무중력 경험 후에는 다르게 느껴진다. 2026년에는 무중력과 중력을 대비시키며 지구적 조건을 재발견하는 작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2025년의 인사이트: 아트 마켓 트렌드 분석들은 "코지 미니멀리즘"과 "바이오필릭 아트"를 2025년의 키워드로 꼽았다 [34], [35]. 대중은 노골적인 기술 미학보다 자연 소재와 따뜻한 질감이 강조되는 '치유적 환경'을 갈망하고 있다.
2026년 전망: 2026년에는 '기술의 은폐(Technological Concealment)'가 예술과 디자인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첫째, '기술 피로감(Tech Fatigue)'에 대한 예술적 대응이다.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갈망한다. 2026년의 미디어 아트는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룰 것이다. 가장 정교한 기술이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험, 알고리즘이 공기처럼 존재하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환경의 설계.
둘째, 자연과 기술의 경계 소멸이다. 바이오필릭 아트가 단순히 '식물을 갖다 놓는 것'을 넘어, 기술과 유기체가 진정으로 융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살아있는 균사체가 데이터를 전송하고, 식물의 생체 신호가 조명을 조절하며, 인공과 자연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환경.
셋째, '치유 공간'으로서의 미술관 재정의다. 바비칸의 "Feel the Sound"가 보여준 전신적 몰입 경험과 아트 마켓의 코지 미니멀리즘 트렌드가 만나는 지점에서, 2026년의 미술관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에서 '존재 방식을 바꾸는 공간'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방문객이 전시를 보고 나올 때 달라진 무언가를 느끼는 것, 그것이 2026년 미술관의 목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