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베터 콜 사울' -악이 스스로 악임을 안다면

by 하이드

'베터 콜 사울'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방영된 미국의 범죄 드라마입니다. 역대 최고의 미국 드라마 중 하나인 '브레이킹 배드'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제작자 빈스 길리건이 총괄을 맡았습니다.


주인공은 전작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부패 변호사 '사울 굿맨'으로, 본작은 그의 과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본래 '지미 맥길'이라는 평범하고 가난한 변호사였던 그가 어떻게 범죄계에 발을 들이게 되고, 사울이라는 이름의 거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그와 함께 브레이킹 배드 본편의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까지 촘촘하게 풀려나가게 됩니다.


사실 본편의 지미는 이렇게 간지나게 나오지 않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인간군상이 엮이고 욕망과 파멸이 판을 치는 가운데서도 주인공 지미의 이야기는 힘을 잃지 않습니다. 지미는 선량하고자 노력하나 스스로 타고난 성정이 악임을 알고 있는 인물이며, 이러한 격동의 배경 자체가 지미에게 수많은 딜레마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힘도 없고 가난한 찌질한 변호사에 불과하지만 신이 내린 잔머리의 소유자인 지미의 거듭된 선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장대하게 펼쳐지게 됩니다. 어떻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짓고, 어떤 여파를 만들어 내는지.


브레이킹 배드에서 이미 부패한 변호사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사울 굿맨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지미의 모습이 낯설 수 있습니다. 베터 콜 사울 시점에서의 지미는 한때 사기꾼으로 날렸음에도 자신의 과거를 뒤로하고 변호사로서 정직하게 살아가려 애씁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길거리 사기꾼에 불과한 인물이 열심히 공부해 변호사 이름표까지 달았건만, 제대로 된 일거리는커녕 한 뼘뿐인 미용실 뒷방에 세들어 사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그렇기에 지미는 매 순간 편법의 유혹에 빠집니다. 조금만 잔머리를 굴리면 편할 텐데, 저 사람 하나만 속여 먹으면 될 텐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미는 자기가 스스로 타고난 성정이 악하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재적인 사기 실력을 가졌지만 그 실력을 발휘하면 남들이 피해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유일한 가족이자 선배 변호사인 형 역시 크게 실망할 테고요.



그렇기에 지미는 스스로의 천성을 누르고 정직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 때마다 인생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해집니다. 변호사로 성공하게 된다 해도, 그래서 돈을 잔뜩 번다고 해도 뭐하나요. 사기를 칠 수 없는데. 남들을 속이고 이용해야만 자유롭고 살아있는 것만 같은데.


본성을 억누르고 최소한 부끄러운 사람이 되려 하지 않았던 지미의 태도는 분명히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것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희대의 악당 사울 굿맨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무엇보다 지미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장대한 드라마에서 그는 수도 없이 많은 선택과 마주합니다. 오히려 그랬기에 그 타락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악당 사울 굿맨은 그 많은 선택지가 누적된 끝에 도달하게 된 도착점이었으니까요.


"I am a god in human clothing! I shoot thunderbolt and lightning from my fingertips!"
"나는 인간의 탈을 쓴 신이야! 내 손끝에선 번개가 막 나간다고!"


이러한 구조는 예정된 결말을 피하려 어떻게든 몸부림치다 스스로 실현해버리는 여러 신화들과도 닮아 있는 듯합니다. 국가와 시스템은 현대의 신입니다. 이들이 내린 '동화되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피하려다 끝내 파국을 맞이하게 된 셈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될까요? 그저 태어난 대로 살고 싶었고, 자유로워지기만을 원했는데, 그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 말입니다. 시스템을 거스르고 악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은 굴복이었을까요? 승리였을까요?


또 하나 이 드라마의 재미있는 점은 분명 브레이킹 배드의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인데도 충분히 독립적인 이야기로 기능한다는 겁니다. 사울 굿맨은 브레이킹 배드의 중요 인물이었고, 전작과의 교차점 역시 매우 많습니다. 팬이라면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죠.


그럼에도 사울, 지미의 입장에서 보면 브레이킹 배드의 내용은 그저 여러 인생이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던 도중 충돌하게 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분명 일생을 뒤흔든 대사건이기는 합니다만, '마침내 여기까지 이어졌다'라기보다는 '이렇게 겹쳐지는구나' 라는 감상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기에 베터 콜 사울은 단순한 '과거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에도 한 번 더 새로운 층위를 부여합니다.


곱씹어 볼수록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 끝 없이 튀어나온다는 점이 흥미롭죠. 굉장히 많은 질문들을 남기는 시리즈입니다. 사실 이 글도 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거든요.



"Better Call Saul!"
"Better Call Saul!"
"Better Call Saul!"
"Better Call Saul!"
"Better Call S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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