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땅끝에 서서도 이어져야 하는 삶

by 하이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바다 곁에 위치한 도시를 잔잔한 톤으로 담은 화면은 영화의 분위기를 시종 고요하게 유지합니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난이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담담하고 움직임이 적은 카메라가 관객의 마음도 가라앉힌 채로 한 발 떨어져 받아들이게 해주죠.



주인공 리 챈들러는 한때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현재는 아파트 관리원으로 일하며 홀몸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입니다. 그러던 중 형인 조가 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리는 한때 조카와 함께 잘 놀아주는 좋은 삼촌이었지만, 다시 만난 패트릭은 이미 사춘기가 되어 둘의 사이가 예전 같지만은 않습니다. 딱히 사이가 안 좋다거나, 반항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요. 말 그대로 예전 같지 않다는 겁니다. 그때처럼 낚시도 하고 공놀이도 하기에는 지난 세월과 떠난 사람이 있죠.


리가 패트릭과 오랜만에 만나 같이 지내면서 마주하는 것은 묻어 두었던 옛 기억들이었을 겁니다. 패트릭은 다소 서먹해졌을지언정 과거의 다정했던 삼촌을 떠올리고 다가오려 하는데 정작 그 삼촌은 그걸 어려워하죠.


"I have two girlfriends, I'm in a band, and I'm on the hockey team! My whole life is here! Everything I do is here! Why can't you just stay here?"
"난 여자친구도 둘이나 있고, 밴드 활동도 하고 있고, 하키 팀에도 소속돼 있어! 내 인생 전부가 여기 있단 말이야! 내가 하는 일들 전부가! 왜 내가 여길 떠나야 되는데?"


패트릭의 대사가 은근히 쓰레기 같긴 합니다만, 결국은 가족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생물이죠. 모두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관계는 가족일 테고요. 그러나 나를 나로 있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도 삶이 남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부채감과 죄의식 속에서도 세상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평생 낫지 않기도 하는 법이죠. 극복하고 일어서야 된다는 말도 어떨 때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아무한테나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가끔은 영화 속에서도요.


"I can't beat it."
"내가 못 버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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