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3명이 다 함께 돌려까는 양파 하나
이야기 전달 매체로서의 게임이란 건 무척 복잡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 필요하다고도,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고, 그저 '게임'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엔 그 전달 방식 역시 무궁무진합니다. 아예 이야기 그 자체가 게임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경우도 있죠.
결국은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문제인 듯합니다. 게임의 스토리가 타 매체와 차별화되는 점은 플레이어의 조작, 즉 향유자가 세계에 개입이 가능하느냐 여부죠. 그런 면에서 '13기병방위권'의 접근법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는 선에서는요.
13기병방위권은 기본적으로 '괴수', '로봇', '시간여행' 등을 소재로 한 스토리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이런 장르는 스토리의 평가가 게임 전체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해도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게임은 주인공이 무려 13명이나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이고, 대하소설에서도 어지간하면 구경하기 힘든 숫자죠.
이 13명의 주인공들이 수없이 엮이고 설키면서 장대한 사건의 진상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 이 게임의 골자입니다. 어떤 인물의 시점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사실이 다른 인물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중 튀어나오는 일은 예사고, 몇 개의 시점이 교차되어 관찰하는 입장인 플레이어만이 알 수 있는 진실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을 직접 조작하는 것은 물론 플레이어 본인도 끊임없이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머리를 굴리게 만듭니다. 실질적으로는 준비된 스토리를 읽는 것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론 어느새 게임 속 세계에 융화되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양새가 되는 거죠. 이렇게 뭔가를 '알려줄 듯 말 듯'한 스토리텔링 방식 덕에 유지되는 긴장감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한 갈래로 모이는 절정부에서는, 원래 이 게임은 '로봇'과 '괴수'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되새겨주듯 '기병'을 조작해 몰려드는 괴수들을 끝없이 박살내는 플레이가 펼쳐집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가진 체험은 역시나 게임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간 그토록 몰두해서 따라온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말로 '내가 이 세계를 지킨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임하게 만드는 경험 말이죠.
이외에도 스토리텔링에 풍성함을 더해주는 요소는 여럿 있습니다. 게임의 배경인 1980년대 일본의 도시 풍광을 세련되게 그려냈고, 소재나 시대에 걸맞게 고전 SF나 괴수 장르에 대한 레퍼런스도 게임 전반에 산적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요소들에 친숙함이나 향수를 느끼기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그래픽은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죠. 이런 그래픽은 제작사 바닐라웨어의 전매특허이기도 합니다.
결국 13기병방위권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그 벽을 넘어 제대로 빠져드는 데 성공한다면 분명 잊히지 않을 작품이 될 겁니다. 하면 할수록 계속 새로운 모습이 나오는 게 거대한 양파가 따로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