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었구나, 어린 시절 내가 꿈꿔봤던 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는 영국의 인기 추리 소설입니다. 2013년 첫 작품 '쿠쿠스 콜링' 이래 최신권 '홀마크드 맨'까지 총 8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출간될 때마다 현지에서의 열렬한 관심을 받는 것은 물론 장기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현재까지 방영 중이죠.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다소 부족한 편인데, 사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이 시리즈를 쓴 것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이기 때문입니다.
롤링은 이 시리즈를 쓸 때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을 사용하는데, 1권이 처음 나왔을 당시엔 이 신인의 정체가 해리 포터의 작가라는 것을 감춘 채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름값 없이 순수하게 작품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의 정체를 공개하자 당연히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죠.
그런 독특한 해프닝이 있었기에 이 소설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결과를 말하자면 정체를 밝히기 전 로버트 갤브레이스로서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높았고, 이후엔 대단한 광고 효과를 보았으니 참으로 영악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전직 군인이었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의가사 제대한 현직 사립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와 그 조수인 '로빈 엘라코트'의 탐정 사무소를 배경으로 각 권마다 기이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아주 고전적인 후더닛(Whodunit, 범인은 누구인가?) 소설입니다.
잘못하면 그저그런 진부한 내용이 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이 시리즈는 자기만의 개성으로 이 익숙함을 멋지게 고풍스러운 골동품으로 뒤바꿉니다.
먼저 현대 런던을 누비는 고전적인 사립탐정이라는 그림 자체입니다. 고층 빌딩이 늘어서고 각종 첨단 기기가 즐비한 가운데 직접 발품을 팔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탐정이란 것은 그것만으로도 낭만적인 향취가 느껴집니다. 단순히 배경뿐만 아니라 사건의 중심축이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들과 맞물려 있다는 점 역시 조화를 더해주죠. 어릴 적 탐정이란 존재를 동경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 남아 있었구나, 이 시대의 탐정'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거기다 추리 소설 자체로서의 탄탄한 완성도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달리 성인 소설이라는 티를 팍팍 내고 싶기라도 한 듯 다루는 사건 역시 상당히 수위가 있고 적나라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파헤치는 도중 수많은 단서들을 교묘하게 제시했다가 종반부에 이르러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좋은 평을 받는 또 다른 요소로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들 수 있습니다. 전작부터 이어진 작가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분야죠. 단서를 파헤치는 조사 행위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성 상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이러한 빈 자리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메워 줍니다. 물론 추리 소설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한 작품입니다만, 주인공 코모란과 로빈의 관계 변화에 더 중점을 두고 즐기는 독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해리 포터의 글로벌적인 대박 흥행에 비견할 바는 아니어도 작가에게 있어서 제2의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겠죠. 그에 걸맞게 영국의 BBC 방송국에서 2017년부터 드라마 시리즈 'C.B. 스트라이크'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2월 현재는 시즌 7 '러닝 그레이브'의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올해 말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드라마 시리즈가 이렇게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상업적인 성과 역시 고무적인 수준입니다. 시즌1 '쿠쿠스 콜링'은 방영 당시 845만 명이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이후 시즌을 거듭하며 점차 낮아지긴 했으나 가장 최근에 방영된 시즌 6 '잉크 블랙 하트' 역시 525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영국의 국민 드라마인 '닥터후'가 전성기 시절 1330만명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결코 만만치 않은 성과인 셈이죠.
다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접하기 어려운 시리즈라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처음 롤링의 작품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만 해도 발빠르게 국내 번역이 이루어졌으나, 아무래도 해리 포터 같은 내용을 기대한 독자층에게는 그리 어필하지 못했는지 3권 '커리어 오브 이블' 이후로는 출간이 중지된 상황입니다.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는 것이,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가지고 접근했다간 놀랄 정도로 상당히 잔인한 면모도 가감 없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앞서 낭만적인 탐정의 면모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사회적 문제에 더불어 날것 그대로의 악의적 감정들이 꼼꼼히 묘사되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요소입니다.
아쉬운 감정을 드라마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 역시 적극적인 수입이 진행되지 않아 현재 C.B. 스트라이크를 시청할 수 있는 국내 OTT 서비스는 쿠팡 플레이 하나뿐이네요. 그마저도 최신 시리즈인 시즌 5, 6뿐이니 여러모로 한국에서 즐기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작가의 유명세에 더불어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낸 시리즈임에도 감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다소 의아하면서도 뼈아픈 부분이기도 합니다. 해리 포터는 물론 닥터후나 셜록 등 영국 컨텐츠의 전성기가 이제 지난 시대라서일까요......
그래도 한 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만큼 시간 날 때 정식으로 번역 출간된 권을 일독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 두시더라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