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발더스 게이트2' - 전설의 모험을 떠났습니다

by 하이드


최근 전설적인 게임 발더스 게이트 2를 끝까지 플레이했습니다.


네, 몇 년 전 돌풍을 일으켰던 신작 3편이 아니라 2000년에 발매된 2편을요. 사실 장대한 판타지 RPG를 즐기고 싶었는데 컴퓨터 성능이 따라주지 않아서 수십 년 전 게임을 굳이 들췄다는 말은 필요 없겠죠.


아무튼 반쯤 충동적으로 시작하게 된 2편이었고, 과연 이 오래된 게임이 재미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 1편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지만 플레이가 상당히 고통스러웠거든요. 재미있었지만 고통스러웠죠. 복잡한 옛날 게임을 이제 와서 즐긴다는 건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한 순간.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복잡한 화면과 불편한 조작, 대사를 읽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자 저는 30분도 못 버티고 게임을 끄고 말았습니다. 역시 요즘 시대에 즐기기는 어려운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러고 나니 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분명 그렇게 마음을 접고 이제 손 대지 말아야겠다고 정했을 텐데, 기묘하게도 밤에 자기 전에 그 투박한 화면이 자꾸만 떠오르는 겁니다. 대체 왜였을까요. 그냥 그 불편함만 좀 견디면 대단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상상이 솔솔 피어오르더군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저는 다시 게임을 켜게 됐습니다. 한 번 꾹 참고 저기까지만 가보자, 저 몬스터만 해치워보자, 인내심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거대한 판타지 도시 아스카틀라의 복잡함에 막막함만이 느껴졌는데, 하나 둘 작은 퀘스트들을 해결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그 광활함은 제가 모험해야 할 공백으로 다가왔습니다.


괴물들에게 빼앗긴 성을 되찾아 성주도 되어 보고, 둥지 깊은 곳에 버티고 있는 무서운 용도 잡아 볼 수 있는 세계였죠. 화려하고 강력한 마법들도 마음껏 날려 볼 수 있게 됐고요. 훨씬 발전한 비주얼의 최신 게임들도 여럿 해봤는데, 제가 이런 투박하게 만들어진 세계에 이렇게 깊이 빠져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그래픽 카드는 상상력'이라는 말이 있던가요. 비록 세밀하지도 않고, 정보량도 적은 낡은 탑뷰 그래픽입니다만, 인간의 상상력은 본능적으로 그 빈 곳을 채우려 하게 되죠.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하고, 괜히 머리 싸맬 필요도 없는 최신 게임들 역시 매우 좋습니다만, 한정된 정보만으로도 전설적인 모험을 그리게 해주는 경험도 못지 않게 특별한 듯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의 원류인 TRPG 장르는 상상만을 기반으로 즐기는 놀이니까요.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애초에 글자만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는 소설이란 매체는 성립되지도 않았겠죠.



그렇게 친절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발더스 게이트 2는 제가 간만에 푹 빠져서 즐긴 게임이 되었습니다. 엔딩까지 와서는 드디어 내가 이 전설적인 모험의 끝을 봤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게임 시장이 요즘처럼 고도화되기 전, 잘 만들어진 고전 게임들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요. 진짜 재미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겠다는 열정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요즘 게임이라고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인적 드문 미개척지를 항해해야 했던 그 생생함은 그 시절만의 것이죠. 요즘 같이 짧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게 된 시대에도 이런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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