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해의 조건'

by 하이드

'화해의 조건(원제 Minding the Gap)'은 미국 소도시의 생활상을 밀접하게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감독 빙 리우가 실제 자신과 친구들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내용을 봤을 때 번안된 제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차라리 그대로 음차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아스팔트 도로에 경쾌하게 부딪히는 스케이트보드 소리가 먼저 귀를 사로잡습니다. 이어 감독 본인을 포함해 함께 자란 죽마고우들의 멋진 보딩 장면들이 펼쳐지죠. 이것만 보면 스케이트보드나 젊음에 관련된 영화 같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떠올려보자니 살짝 석연찮아집니다. 그보다는 좀 더 무거운 내용과 어울릴 제목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보고 있으니 시원시원한 보드의 움직임과는 달리 이들의 얼굴이 마냥 밝아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보딩을 할 때는 즐거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피로에 찌든 듯한 기색입니다.


이런 미묘한 의문들을 만든 다음에야 영화는 제대로 시작하게 됩니다. 스케이트보드로 시작했던 영화는 어느새 태어날 때부터 빈민가에 살아온 젊은 친구들의 삶으로 파고듭니다. 가난, 가정폭력 등의 현실로요. 톤은 절제되어 있지만 현실을 숨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라는 것은 뭐가 됐든 창작자의 의사대로 재구성된 매체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실제와 같다고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더라도요.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시종 건조하고 솔직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억지로 삐딱하게 바라본들 이런 이야기를 거짓말로 늘어놓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이 영화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감독이 자신들의 삶을 마냥 연민어린 시선으로 담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보통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를 변호하게 되기 마련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빈민가의 현실과 벗어나기 힘든 삶의 애환에 염증을 보이면서도 영화는 대물림되는 폭력과 악의에서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사는 게 나쁜 건 알아, 그런데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걸 어떡해, 그래도 나쁜 건 나쁜 거지, 알아.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걸 듣는 것 같습니다. 끝이 없는 굴레입니다.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중간중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면은 잊을 만하면 등장합니다. 여전히 경쾌한 소리와 함께요. 결국 등장인물들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은 그 보딩뿐만인 듯합니다. 몇 없는 휴식처라고 할까요.


사회란 분명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가끔은 어느 순간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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