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위로 오른다

소수민의 직장생활 | 처절한 슬픔 속에 먹는 삼겹살이 이렇게 꿀맛이라니!

by 김라미

이번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상반기 승진자 명단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훨씬 늦게 입사한 후배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 직급에 머물러 있은지 벌써 8년차 이다. 부끄럽다. 직원들 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표정관리도 잘 됐었다.

그렇지만 이내 어둡고 축축한 슬픔 같은 것이 나의 내면을 점점 잠식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승진 심사가 끝나고 나면 흘러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 보이지 않는 손...뚫을 수 없는 천장....

퇴근길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나를 절벽 끝으로 더 밀어내는 듯했다.

평생 몸 담은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한계라고 느껴진다. 그 박탈감과 소외감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기에 내 안의 외로움은 더 큰 것 같다. 좌절감과 무력감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속이 상했다. 계속 눈물이 났다. 차를 중간에 세워 운전대에 얼굴을 박고 소리 내어 실컷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하도 울어서 눈이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 집 현관문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백김치가 떠올랐다. 며칠 전 처음으로 백김치를 담갔는데 그 맛이 궁금했다, 잘 익었는지, 맛이 있는지... '백김치는 삼겹살이랑 먹어야 제 맛이지.' 백김치를 맛본다고 생각하니 삼겹살이 먹고 싶어졌다. 울고 들어와 퉁퉁 부은 내 모습을 본 남편과 아이들은 얼른 삼겹살을 사 와서 구워 주었다. 백김치와 삼겹살을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백김치는 딱 잘 익었다. 삼겹살과 먹으니 꿀맛이었다.


그런데... 이 처절한 슬픔 속에 먹는 삼겹살이, 이.렇.게... 꿀맛이어도 되는 건가!?


맛있는 것을 먹고 있지만, 가슴 한편에 눌러져 있는 설움은 그대로였다. 입 안 가득 볼이 터질세라 삼겹살과 백김치를 우적우적 씹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무거운 멍울 같은 것이 느껴졌고,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문득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위로 오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음을 공부하며 들었다.


"엄마, 괜찮아?" 아이들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아이들의 그 말이 '엄마 울지 마, 괜찮아!!'로 들렸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삼겹살과 백김치를 먹으며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고, 먹고 싶은 본능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내 감정을 잘 맞이하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분위기는 침울했다. 내가 말없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삼겹살을 먹고 있으니 가족들 기분도 많이 가라앉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들 밥그릇에 고개를 묻은 채 수저 소리만 달그락달그락 냈다.


"엄마, 요즘 인스타에 알려진 유명한 신점 보는 데가 있는데, 여기 내가 예약해 줄게, 엄마 승진 언제 되는지 가서 물어봐, 용하돼."

아이는 며칠 전 내게 샌드위치를 집어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 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대해준다.(좋은 엄마, 나쁜 엄마, 이상한 엄마 편) '울 강아지 이럴 때는 엄마 편이구나....'


평소 그런 것을 잘 보지 않는데 갑자기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신점? 함 보러 가볼까?'하고 잠시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입 안 가득 삼겹살을 넣고 눈물범벅인 얼굴을 하고서 솔깃해하는 내 표정.. 참 엉뚱해 보였을 것 같다.




다음날 저녁에는 송년 모임에 초대받아서 갔다. 어쩌다 앞자리에 앉았는데 소프라노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실내에 설치된 조명들은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조명 빛을 타고 이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꽉 채우는 듯했다.

실내 공간이 크지 않아 소프라노와 내가 앉은 거리는 가까웠다. 바로 앞에서 노래를 들었다. 마치 그 풍경이 슬픔에 빠져 있는 나만을 위한 공연처럼 느껴져서 큰 위로가 되었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속 울음을 삼키고 있었지만, 나는 오늘 밤의 이 아름다운 선율도 흠뻑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눈물이 나는 것도 내게 필요해서 난다는 것을... 큰 좌절감을 매년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데 어떻게 눈물이 안 날 수 있고, 어떻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감정을 겪을 때마다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내가 차츰 치유되고 있다는 것이 알아졌다.


이틀 휴가를 내고 쉬었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승진 탈락은 그때마다 충격이 컸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다 같이 기차를 탔지만 다른 사람들은 목적지에 다 내렸는데, 나만 내리지 못하고 끝도 없이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도대체 이 기차에서 언제 쯤 내릴 수 있을까?




두 번째 편이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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