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나쁜 엄마, 이상한 엄마

이번생은 가, 족같이 | 엄마와 트러블을 겪으며 자신을 조절하는 공부를

by 김라미

난 항상 '좋은 엄마'이고 싶지만..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에게 뭐라도 먹여서 보내야 할 것 같아 샌드위치를 사서 집에 가는 길이다.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시간 맞춰 태워주기로 약속을 하고 나왔더니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어디야?"

"지금 아파트 주차장 다 와가."

아직 도착하려면 5분 정도 더 남았지만 아이의 성화가 무서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매서운 눈초리로 내게 쏘아붙인다.

"엄마는 왜 거짓말을 해? 주차장도 아니면서 왜 주차장에 다 왔다고 해?"


아, 이런!!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차량출입 센서가 자동 감지되어 세대로 알림이 가는 걸 생각 못했다.

"아니,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곧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어."


그래도 샌드위치 먹을 시간은 있겠지 싶어, 우유랑 함께 먹어라고 건네었다.

"지금 시간 없어, 안 먹어."

"10시까지면 아직 여유가 있어, 엄마가 태워주면 되니까, 샌드위치 먹고 가. 먹고 가도 돼."

아침부터 빈속으로 가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는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제발 뭐라도 먹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10시가 아니라 9시 45분까지 가야 된다고!" 아이는 짜증 섞인 말을 쏟아냈다.

"그럼, 샌드위치 들고 가자. 차 타고 가면서 먹어도 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시간 될 때 좀 먹게 가져가."

그제사 손에 받아 든다. 아이를 태워 아르바이트하는 곳 정문 입구에 내려준다는 생각으로 최단거리 동선으로 열심히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아이가 다른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짜증을 낸다.

"직진, 직진하라고!!" 나는 정확히 어딜 말하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여기? 저기 아냐?"



이런, 나도 모르게 감정폭발 '나쁜 엄마'가 될 줄이야!


내 머릿속엔 오직 정문 앞으로 가는 동선인데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니 순간 헷갈리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급기야 아이는 내게 퍼붓기 시작한다.

"엄마보다 내가 더 정확하게 아는데, 왜 가라는 데로 안 가고 자꾸 딴 데로 가는 거야? 엄마가 잘 알겠어? 내가 더 잘 알지!!"

"저기, 저리로!!" 아이는 엄마에게 지시하듯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짜증을 낸다.

아이의 짜증은 폭탄처럼 던져지고, 차 안의 산소를 다 집어삼켜 버린 것처럼 내 마음은 답답해진다.


내 감정도 멈출 틈 없이 폭발해 버린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설명을 알아듣게 해!!"

나의 고함소리에 아이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횡단보도 앞에 세워 줘."

원하는 위치에 내려주자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차에 확 던져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나 이거 안 먹어!!"

'앗! 큰일 났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상상한 것은 아이에게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이고, 차로 태워 주면서 모녀지간에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었는데,,, 다 망쳤다.'


운전석에 앉아서 뛰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봤다. 급해 보였다. 그리고 뒷문으로 가서 관리인분으로 보이는 누군가와 얘기하며 무언가를 받아 들고 다급하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아, 정문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뒷문으로 들어가서 사전 절차를 처리한 후에 출입해야 했나 보다.'

조급하게 시간에 쫓기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화가 난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길래, 경험 삼아 사회생활을 겪어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될 것 같아 환영했었다.

그런데 시작한 지 몇 달, 아이는 자주 힘든 기색을 내비쳤다. 매장 사장님과의 관계, 고객 응대 등 인간관계의 피로감으로 힘들어했다.



소리 지를 땐 언제고? 비굴하게 짝사랑하는 '이상한 엄마'


아이가 하루 종일 쫄쫄 굶을 것을 생각하니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차를 주차하고 다시 샌드위치를 챙겨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개장 전이라 입구에서 기다려야 했다.

저 멀리 매장 안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의 옆 모습이 보인다. 눈에 노안이 와서 주변에 다른 건 하나도 안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우리 아이 움직임만은 마치 돋보기를 쓴 것처럼 커다랗게 확대되어 보였다.ㅎㅎ


10시 개장이 되자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살금살금 들어갔다. 앗!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왔다. 아이는 흘깃 나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자기 할 일을 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아이에게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예랑아, 이거 좀 먹으면서 해." 아까 아이에게 소리쳤던 기가 센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애원하는 비굴한 엄마 모습만 있다. 아이는 다행히 엄마가 주는 샌드위치를 받아서 사물함에 넣어 놓는다.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며 이빨에 힘을 꽉 주면서 작은 소리로 얘기했다.

"빨. 리. 가. 라. 고!!"

"알았어, 갈 거야, 꼭 먹고 해야 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샌드위치까지 전해주고 나오는데 혼자 웃음이 났다. 이건 짝사랑이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속으로 혼자 좋아 히죽히죽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싶다.


저녁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한 아이는 샌드위치도 먹지 않았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김장김치가 있어 수육을 삶아서 밥과 함께 내었다. 다행히 나와서 말없이 먹는다. 먹어주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예랑아, 엄마가 어떤 책을 봤는데, 거기에 인간 알레르기라는 표현이 있더라."

웬일?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아이는 웃음을 터트린다. 마치 내면 속에 예민한 부분이 건들어져서 답답함이 해소된 것처럼 빵 터져서 웃고 또 웃는다.

"엄마, 나 요즘 아르바이트 하면서 힘들게 했던 손님이랑 비슷한 사람을 길 가다 보면 움찔해져, 저 사람도 나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이랑 똑같은 스타일일까? 저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아, 닫혀있던 아이 마음이 드디어 무장해제 된 것 같다. 이제 안심이 된다.

다행히 아이와 소통 성공이다. 야호!! 아이가 자기 속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얘기하면서 수육과 밥도 깨끗하게 다 먹어치운다.



'사랑이 전제된 가족은 100% 폭발하며 더 깊이 만나질 수 있다'

조화로운 불협화음, trouble is harmony


청소년기에 아이를 키우면서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그 이유가 아이의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아이를 학원에서 태워오다가 그때도 차 안에서 크게 갈등을 겪었던 적이 있다.

아이는 울며 말했었다. "엄마, 나도 내가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나는 그동안 우리 아이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데 잡혀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와 함께 겪게 되는 트러블은 더 힘들고 아팠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 우리 아이도 엄마를 통해 인간관계를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고... 우린 둘 다 서툴고 어렸다. 그 시절 나는 직장생활도 힘들었고 집에선 쉽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었다. 아이 역시 대학 입시 공부 하느라 힘들었지만, 집에선 엄마와의 관계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린 둘 다 각자의 성장기를 치열하게 겪으며 그 시절을 잘 지나왔다.


지나고 보니, 아이는 엄마와 트러블을 겪으며 자신을 조절하는 공부를 해왔던 것 같다. 엄마도 아이의 성질을 힘들게 받아주며 그 마음을 공부한 덕에 세상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저절로 하나둘씩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아이는 성장기 부모와 치열한 갈등을 겪으며 스스로 조절하는 힘이 길러지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사회생활이나 결혼생활 하며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게 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뤘을 때 발생하게 되는 트러블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만 불친절하다. 밖에 나가선 누구에게도 반항하거나 소리 지르지 못한다. 아이는 부모와 자신이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 놓고 100% 폭발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자라며 순종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했었다. 자신과 타인의 다양한 감정선을 경험하는 것이 리듬 있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협화음 같지만 '조화로운 불협화음'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이 전제된 가족은 서로 폭발하며 더 깊이 만나질 수 있는 것 같다. 마음공부를 지도해 주신 스승님은 이것을 '트러블 이즈 하모니'라고 표현하셨다.


나는 아이의 성격이 좋다, 나쁘다로 구별 지으며 그것에 잡혀서 아이를 바꾸려고 했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가 아무 분별이 없다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


아이가 아무렇지 않다가 엄마만 보면 짜증이 나고 불친절해지는 자신의 그 순간 마음작용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이완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화해되고 타인에게도 조화로움의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아이도 자신의 까칠하고 예민한 에너지를 통해 크게 성장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돌려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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