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나를 통해 나온 타인

이번 생은 가, 족같이 | "난 엄마랑 안 맞아!!"

by 김라미

아이는 엄마에게 또 날이 서 있다.

"엄마는 이제와서 왜 그래? 그동안 내가 알아봐 달라고 해도 엄마가 알아봐 주지 않았잖아?"


딸은 자신의 치아교정과 관련해서 혼자 이미 여러 병원 상담을 받아보았고 SNS를 통해 진료후기도 다 파악해 본 것 같았다. 때론 침묵으로 때론 가시 돋친 말로 엄마를 대하는 아이 앞에서 나 역시 매정하게 단절을 선언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품어보려는 엄마 마음이 함께 일어난다.


"난, 엄마랑 안 맞아."


아, 나쁜 딸..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한테 쉽게 할 수 있는지.. 순간 가슴을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고 먹먹하다. 눈물도 나려고 한다. 나도 아이도 말이 없다. 방안은 한참 동안 서먹한 공기와 무거운 침묵으로 채워지고, 엄마에게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아이의 목소리는 한동안 내 가슴속에 남아 소리 없는 메아리로 울린다.


다른 사람이랑은 잘 맞고, 엄마 하고만 안 맞는 건지 확인하고 싶어 그럼 누구랑 잘 맞냐고 물었다. 나만 싫어할까 봐 속으로 두려웠지만 그 마음속에는 '어디 두고 보자.' 하며 팽팽하게 대치하는 마음도 있었다.


"엄마한테 그 말이 그렇게 상처가 될 줄은 몰랐어, 세상 어디에도 나랑 잘 맞는 사람은 없지,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야."


대체 이 안도감은 뭐람? 그 말이 '엄마만 싫어하는 건 아니야.'라고 들려서 다행스러웠지만, 자신이 뱉은 말의 파장이 너무 커서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는 아이의 노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난 아이들이 항상 내 마음을 잘 알아주면 좋겠고 다정한 말투로 살갑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왜냐면 평생 어렵게 직장 생활하면서 키워 놨으니까 자식은 당연히 그래야 하고, 항상 엄마한테 잘해 줄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다.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마다 나와 아이는 자주 부딪혔다.


나는 최대한 충분히 더 알아보고 엄마가 결정을 내리는 대로 따라주기를 바랐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때가 많았고 생각이 다른 엄마에게 강하게 저항했다.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이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아이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훈련이 많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탓에 엄마 아빠가 없을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혀 독립적으로 성장해 온 것 같다. 아이와 감정적으로 대치할 땐 내 감정에 묻혀서 잘 몰랐는데 글을 쓰다 보니 아이의 많은 부분이 더 선명하게 알아지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보였다.

지난날의 사건들을 소환시켜 보니 아이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하도록 했을 때가 더 순조로웠고 오히려 결과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자식은 나를 통해 나온 타인'


예전에 마음을 공부하며 배웠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그냥 듣고 지나쳤지만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낳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라면서 엄마와 부딪히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아이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겪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지금 상황이 지극히 정상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것이 알아진다.



나는 드라마를 많이 봐서 엄마와 딸은 아름다운 관계여야 한다는데 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으면 아이가 나중에 사회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가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고쳐야 한다고 몰아붙이기도 했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 없는 것이 현실이고 정상이다. 딸이라고 해서 엄마에게 항상 다정하게만 대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라고 해서 딸이 항상 예쁘게만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가장 사랑받고 싶어 하고,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때로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인 것 같다. 아이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엄마가 속상해서 우는 모습을 보고 화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버리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엄마와의 갈등을 통해 잘 싸우는 방법도 터득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엄마'라는 직업도 참 극한 직업인 것 같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인간관계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어 안 맞는 사람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엄마와 지금 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난 엄마와 안 맞아.'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건데, 난 왜 그렇게 그 말에 마음 아팠는지 모르겠다. 항상 가족들과 잘 맞아야 하고, 서로 잘 맞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어쩌면 아이의 그 언어가 엄마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기도 한데 그때는 몰랐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가족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 놓고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평생 직장생활 한다고 시간에 쫓겨 살며 아이와 단 둘이 함께 보낸 적이 많이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내어 아이와 밥도 먹고 쇼핑도 하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 '엄마의 문제도 아니고 딸의 문제도 아니고 엄마와 딸의 살아있는 관계의 작용'이기에 서로 안 맞는 부분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아이가 인간의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을 넓혀가는 연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렵게 날짜를 잡아 단 둘이 시내에 가서 파스타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단 둘의 데이트는 생각보다 긴장되고 어려웠다. 차를 같이 타고 가는 내내 말이 없었고, 밥을 같이 먹을 때도 엄마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씩은 "이것도 먹어 봐." 하며 마음을 써줬다. 가끔씩 아이가 엄마에게 마음을 써주는 모습이 느껴질 땐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내 마음이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를 널뛰기했다.


그날은 비가 왔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아이와 우산을 같이 쓰고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아이의 기분을 살피느라 못했던 말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하고 싶었다. 이때다 싶어 비굴하게 사정하는 목소리로 내가 입을 떼었다.


"예랑아, 엄마도 너의 새로운 매일매일을 처음 대하기 때문에 많이 서툴러, 엄마 좀 이해해 줘,

엄마가 많이 미안해."


아이는 생각지 못한 엄마의 고백에 머쓱해했다.


"나도 엄마랑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잖아? 어릴 때는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커서는 학교랑 학원만 다녔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 그냥 사는 거지."


툭 던지듯 말하는 아이의 말에 나의 노력을 마음으로 받아 준 것 같아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지금 자신의 곁에서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엄마의 심정을 아이도 지나고 나면 다 알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아이도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고 한계를 느낄 때마다 지금처럼 엄마가 자신을 대하던 방법과 노력을 떠올리며 사람들 곁으로 좀 더 조화롭게 다가가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남편에게 아이와 있었던 일을 일러바치듯 얘기했다.

"예랑이가 나한테 '엄마랑 안 맞아.'라고 했어. 너무 속상해서 나 울었어."



"근데, 당신도 장인어른이랑 안 맞잖아?"


...........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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