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불안 | 꿈 속에서 본 낯선 얼굴, 또 다른 나...
회색 빛의 뿌연 시야, 콘크리트 담으로 이어진 작은 골목길.. 어딘지 알 수 없는 낯선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딘가 걸어가고 있던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다. 주저앉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편안해 보이지도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고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나는 멈춰 섰고, 나 역시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누굴까? 왜 저러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나를 쳐다보고 있을까?' 걸어가다 우연히 마주친 그의 표정이 내 의식 속을 꽉 채웠다. 그가 누군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꿈이었다. 목구멍이 마르고 기침이 났다. 목이 따가워 잠이 깨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새벽에 잠을 깨다니..' 내일 아침 출근 하려면 오늘 밤 잠을 잘 자야 하는데 꿈 때문에 깨 버렸다. 내일은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라 챙길 일도 많은데 잠을 못 자고 있으니 더욱 불안해진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 가족들과 주말 저녁 식사를 잘했다. 남편, 아이들과 모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근황을 서로 얘기하며 편안한 저녁을 보냈다. 적당한 포만감과 노곤함으로 잠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다시 눈을 감아 보지만 정신은 점점 더 깨어났다.
꿈속에서 본 낯선 이의 검은 눈빛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자꾸 떠오른다.
그는 눈동자도 없고 초점도 없었지만 칠흑 같은 검은 눈빛은 분명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에 짓눌려 홀로 버텨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고되 보였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굴까, 왜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한쪽 무릎만 어정쩡하게 세운 채로 바닥에 꿇어앉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한 상태로 뚫어지게 나를 응시하던 그 사람...
무슨 일일까? 혹시,,, 내일 출근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꿈을 통해 미리 알려주는 걸까? 궁금했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할수록 불안은 더 크게 엄습해 온다. 불안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의 눈빛 속에 있던 무겁고 검은 불안이 내 안에 번지고 있었다. 불안은 순식간에 나의 전체를 잠식해 버린다. 신경이 곤두선다. 눈을 감았으나 수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얕은 잠에 들다 깨다 하며 긴장감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는 것 같다. 머릿속에는 공연한 생각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혹시 이번 인사 때 내 자리에 변동이 있는 건가?'
'혹시 이번 인사 때 내가 모르는 안 좋은 결과가 미리 정해진 건 아닐까?'
'혹시... 혹시... 혹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걱정스러운 생각들은 나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나는 승진을 못했기 때문에 이번 인사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나니 나에게 꼭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자꾸 불안해졌다.
에잇~ 잠들지 못할 바에 차라리 눈을 떠야겠다. 불안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야겠다. 글을 쓰며 동틀 녁까지 깨어 있다가 잠시 눈을 좀 부치고 나니 아침이 되었다.
출근해서 오전에 이것저것 일을 챙기다 보니 어젯밤 꿈속에서 본 낯선 이가 문득 떠올랐다.
그가 누군지 알아졌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불안둥이' 그는 바로 '나'였다.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 알아졌다.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은 지금 나의 상황과 같았고, 지금 시절 삶의 무게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임이 알아졌다. 아, 안쓰러워라~
좌절감으로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지만 휴식을 가지며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노력한 만큼 괜찮아졌다 생각했지만 불안은 아직 내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괴로운 마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셑팅시키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지, 정작 내 마음은 괜찮아지지 않았나 보다.
불안과 우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난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불안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 없다 하는 걸 보면 괜찮아지기 위한 노력만으로는 꿈 속에서 불안해하는 영역까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어쩌면 그 노력이 괜찮다는 최면이 되어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꿈을 꾸고 나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불안해할 때가 많았다. 잠을 자면서도 마음(감정)은 쉬지 않고 작용하고 있고, 그것이 꿈으로 투영되고...
생각해보면 그 꿈을 꿨다고 해서 현실 속에서 꼭 무슨 일이 생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꿈은 가장 솔직하고 정직하게 나의 상태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 살고 있는 '불안둥이'를 보여주며 나의 불안을 알아차리게 해 줬다.
어제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인지 하루 종일 피곤해 하는 나를 보고,
"팀장님, 눈 밑에 다크서클 생긴 것 같은데요?"
"...... 아...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