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계절

소수민의 직장생활 | 서운함, 사회생활하다보면 겪을 수 밖에 없는 마음

by 김라미

야근을 하기 위해 직원 몇 명과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남길이 내 앞에 앉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지 않고 옆 테이블에 앉은 선임팀 A팀장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자꾸 신경을 쓴다.

선임팀 A팀장은 남길의 팀장인데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


남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따뜻한 물을 두 컵 받아온다. 당연히 나에게 주려고 오는 줄 알았는데 옆 테이블 선임팀 A팀장에게 갖다주고 다시 내 앞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A팀장 앞에는 이미 물이 있었는데도...


남길은 내가 신경 쓰였는지 나에게 물을 안 갖다 준 이유를 설명이라도 하듯 한마디 한다.


"물 안 드시는 것 같아서.."

"응, 난 물 안 먹는다고 하긴 했는데 직원들 모두 네가 나 주려고 물 받아오는 줄 알던데,,,"

"... 아, 그래요?"


남길에게 서운한 마음이 확 올라온다.

얼마 전 인사 때 선임팀장으로 온 A는 내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한명이었는데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게 되었다. 선임팀장 자리는 근무 점수를 우선적으로 잘 받을 수 있는 자리이므로 승진을 앞둔 사람이라면 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자리를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좌절을 많이 겪었지만 겪을 때마다 아픈 건 사실이다.('쟤는 되는데 나는 왜 안되나요?!')


선임팀장 A가 우리 과로 오기 전까지는 남길과 나는 많이 친했었다. 그땐 사무실 분위기도 재미있었는데 A가 오고 나서부터는 사무실이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남길도 자신의 팀장으로 온 A와 나 사이에서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고 나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서로 말이 없다. 테이블 위는 침묵이 흘렀고 내가 느끼는 서운한 감정은 남길과 나 사이에 어색한 기류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문득, 남길이 자신의 팀장인 A에게 물을 갖다 주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행동이 남길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식당에 오기 전까지 자신의 팀장 A와 업무얘기를 하다 와서, 하던 이야기가 덜 끝났을텐데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동안 친했던 나를 두고 남길이 A팀장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고 내 안에 서운한 마음이 일어났고

그 서운한 마음에 꽉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가 그 감정에 계속 머물러 있었음이 알아졌다.


나의 마음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이니 혼자 시익 웃음이 나왔다.

내가 서운한 마음에만 잡혀 있을 때는

남길에게서 마음이 돌아서고 싶고, 선임팀장 A에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어 났었는데

알고 나니, 그 마음들이 다 거두어진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럴 수 있음으로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서운한 마음에 치우쳐 있는 내가 보이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서운한 마음에 걸려있지는 않게 된다.

서운한 마음에 매몰되어 그 감정에 머물러 있던 내가 그 마음으로부터 빠져나와 잠시 자유를 얻게 된 것 같다.

경직된 마음이 풀어져서 좀 전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땅히, 어디든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 /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몇 해 전 박물관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이 글자를 바라보며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이 풀어지니 남길에게 먼저 말을 걸게 된다.

"요즘 업무도 바뀌고 할 일도 많아서 맨날 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느라 가족이 다 고생이겠네."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 마음이 풀렸다고 남길의 마음까지 풀린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매끄러운 대화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들어가서 처리 할 업무를 했고, 나는 직원들보다 조금 빨리 퇴근하며 인사를 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하며 대꾸를 해주는데 남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 서운한 마음이 올라온다.ㅎㅎ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친했던 남길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남길도 내가 신경이 쓰일 것 같다. A팀장이 오기 전에는 나와 재미있게 지냈지만, 내가 어울리고 싶지 않아 하던 A가 남길의 팀장이 되고부터는 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남길이 더 이해가 되어졌다.


사람 마음의 성질이 그러한 것이고 시절따라 인간관계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인 것 같다. 남길 입장에서는 상황 따라 업무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자신의 상사(팀장)에게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변에 사람(인연)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만 잡아둘수 없듯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골라서 만날 수는 없지 않나? 나도 남길도 바뀐 계절을 맞이하고 있고 그 계절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남길은 나에게 소리 내어 인사 하지 않았지만, 그의 침묵은 마음속의 요란함을 표현하는 더 큰 목소리였던 것 같다. 그 침묵 속에는 인사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음이 알아진다.


그렇다고 서운한 마음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안 그래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 그나마 친하던 남길마저 멀어지게 되니 좀 슬퍼진다.

그건 내 마음의 문제이지 남길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운한 마음은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이럴 때 서운한 마음을 스스로 존중해 주고 잘 바라봐 주는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돌봐주는 공부이고 나를 사랑하는 공부인 것 같다.




"저기, 우리 사무실 너무 조용한 것 같지 않아? 절간 같은데 출입문에 풍경 하나 달까?"

".....무슨 말씀이신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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