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아닌 친병(親病)

온전한 불안 | 아프니까 50이다.

by 김라미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이 지글지글 끓을 만큼 온도를 올리고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다. 온몸에 한기가 든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온 살가죽을 칼로 에이는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난 감기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요즘은 자주 아프다. 최근 아플때 겪는 통증은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들이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며 온 가족을 걱정시키곤 한다.

감기 몸살 같다. 뭔가 뜨끈한 걸 먹어서 속에 든 냉기를 다 물리치고 싶었다.


갑자기 '꺼먼 봉다리가 사준 쌍화탕'이 떠올랐다.

30여년 전 어느날 어둑해져 가는 저녁 누군가 문을 두드렸는데 대학친구 '꺼먼 봉다리'였다.


일직선의 눈매, 볼록 튀어나온 눈썹뼈, 짙은 갈색의 피부톤, 곱습머리, 두꺼운 알의 까만 뿔테 안경, 180cm의 큰 키... 문을 열어주자 '꺼먼 봉다리'는 일직선의 눈매, 그 표정 속에 다정함을 담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서 나를 찾아 왔다는 것에 놀라웠다.


"어? 강호야? 웬일이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아.. 유미가 가르쳐 줬어, 같이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 혼자 왔어."


그때 강호에 대한 소문이 좀 있었다. 인상파답게 싸움을 제일 잘해서 동네 짱을 했었다는 소문이었다. 그때 불렸던 별명이 '꺼먼 봉다리'였다. 강호의 차를 타고 바닷가 근처에 가서 커피숍에 갔었다.

그때도 내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좀 아팠던 것 같은데, 강호가 약국을 찾아가더니 따뜻한 쌍화탕을 사 와서 내게 줬었다. 그걸 먹으니 온몸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숍에서 바라봤던 바닷가 석양과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예쁜 불빛들... 그때의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집에 들어올 때 쌍화탕 좀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편은 내가 멀쩡하다가 갑자기 왜 아픈지, 오늘 혼자 먼 거리까지 운전해서 참석한 결혼식은 어땠는지 궁금해 했다.


"나, 오늘 원피스 입었는데 날씬해 보이려고, 코르셋이랑 거들까지 겹겹이 입고 뱃살 꽉 잡아매고 갔어, 그런데 뷔페가 맛있어서 두 접시나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되네."


"으이그, 그건 체한 거지, 체했을 때는 소화제를 먹어야지, 무슨 쌍화탕이야, 그리고 이제 그런 거 입지 마!!"

(잉? '꺼먼 봉다리 쌍화탕'은 나 혼자만 아는 이야기 인데..?!)


남편은 아이들을 불러서 집안에 있는 소화제를 찾게 했다. 그리고 사혈침까지 찾아와 내 손가락도 따줬다.


내 병을 스스로 진단하자면 코르셋과 거들로 온몸을 동여 멘 데다 뷔페도 두 접시나 먹었으니 소화도 안되고 순환이 안되어서 급체와 몸살이 온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괜찮았는데..ㅠㅠ


이번에 아프면서 '내가 왜 아프지?' 라는 의문이 자꾸 들었다. 요즘 들어 아프면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데 아픈 것에 대한 나의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정상이다. 현재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보는 것이니 나는 여전히 몸도 마음도 어린아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른들이 아프다고 '아이고, 아이고~' 하시던 것을 예사로 들었고 나에게는 평생 그런 시절이 올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내 몸을 꽁꽁 동여 메서 잘록한 허리로 어려 보이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 봤자 '제발~ 살려줘!!' 내 몸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내 나이 50 중반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생이 생로병사로 변화하는 것이 모두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이치이고 자연의 공도(自然公道)라고 배웠다. 그럼 내가 50살이 넘어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이치이고 자연의 공도라는 말이네...


암 치료를 받으시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투병'이라 하지 않으시고, '친병(親病)'이라고 하셨다는 얘기는 큰 울림을 준다. '친병(親病)'이라는 표현속에는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닌 병을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담겨있다. 통증을 느끼실 때마다 자신의 그 통증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대하며 그 병에 적응하시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생각하면 그 마음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신 것 같다.


'한 시대의 위대한 스승의 친병기'를 고작 몸살을 앓는 나와 비교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 할 수 있겠지만 나도 이제 노병사(老病死)에 적응해야 하는 시절에 접어들고 보니 이어령 선생님의 '친병'이라는 표현은 아픈것이 일상이 될 때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내 삶의 큰 이정표로 삼아진다.


'Life is 적응, Life is 해석'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50 중반에 찾아온 새로운 통증에 잘 적응하기 위한 생활과,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병듦이 없기에 그 병듦이 없는 마음으로 몸을 잘 돌보는 공부를 하며,

운동과 건강관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간다는 시각으로 해석하고 싶다.


(몸에 통증이 느껴지면 자꾸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고 우울감에 빠지는 나를 잘 알아채는 공부, 통증이 있기 전에는 생각조차 없다가 통증을 느낌과 동시에 부정적 마음이 일어나는 내 마음을 잘 바라보는 공부)


노병사(老病死)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고 몸이 아픈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고 하니 운동과 먹는 것을 조절하며 내 몸을 돌보는 것에 비중을 더 두어야겠다.


그나저나 내 친구 '꺼먼 봉다리'도 많이 늙었겠다.

"강호야, 잘 살지? 그때 쌍화탕 고마웠어~"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2~3주 정도는 집중해야 할 바쁜 일이 있어 부득이 휴재할 계획입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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