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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07. 2023

안단테

적당히 느려야지

  안단테. 적당히 느리게. 카페의 이름이고 뜻이다. 이탈리아어 걷다에서 유래된 말로 걷는 속도 정도의 느리게를 의미한다. 복지관을 들어서면 랜드마크처럼 카페 안단테가 있는데 느린 학습자,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자리 창출형 카페이다. 거기서 나는 카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자리 사업은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기업처럼 자본을 가진 자본가가 창립한 게 아닌, 비슷한 목적을 가진 소비자나 생산자가 주체가 돼서 결성, 조합원들의 편익과 이윤추구에 더 목적이 있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형태이다. 취약계층이 조합원이 되는 형태로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영리성 성격을 띤다. 취업 취약계층인 경계선 지능 청년들이 조합원이 되어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카페인 것이다.

  조합원은 총 7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서 실제로 근무를 해서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청년은 나까지 포함 4명 정도이다. 출자금이란 걸 내야 조합원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실근무자를 제외하면 출자금을 내고도 근무도 정산도 못 받는 인원이 생긴다. 인건비를 줄 수 있는 수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익 분배를 위한 근무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작년에는 협동조합 설립인가도, 사업자등록도 안 돼 수익을 분배받지 못했다. 즉 무급여로 일했다는 말이다. 5월부터 가오픈을 하고 7개월가량을 급여 없이 훈련생이란 신분으로 일하는 동안 나는 간간히 단기 알바를 하며 교통비도 부족하게 보냈다. 한 청년을 제외하고 조합원으로 있는 청년들 전부 카페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비슷한 상황이다.


  청년들은 스케줄을 배당받아 일한다. 월요일은 누구 금요일은 누구 하는 식으로 하루에 혼자 근무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요일은 화수 이틀이다. 10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고 작년, 2022년까지는 복지관 시간에 따라 주말을 제외한 금요일까지 카페 오픈을 했다. 금년부터는 토요일까지 운영할 거라고 한다.


  카페는 삼성재단과 사랑의 열매에서 후원하고 닮 복지재단이라는 복지관의 운영지원을 받는다. 작년까지는 삼성의 자금으로 재료비나 운영비에서 자유로웠다. 카페의 하루 매출이 만 원도 나오지 않아 일반 카페였다면 진작에 폐업 수순을 밟았겠으나 지원이 탄탄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지원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삼성재단이 빠져 카페 매출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보다 몇 배는 매출 증대가  필요한 상황이고 매출 문제는 청년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나 매출의 책임은 아직까지, 복지사들이 지고 있다.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운영방식이고 타파돼야 할 구조이지만 나 역시도 운영 능력까지는 없어 복지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복지사들의 보조 없이는 카페를 운영해 나갈 수 없다. 우리끼리는 자립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아니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도. 청년들에게도 카페 운영을 맡겨서 그들이 운영을 해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카페 근무만 따라가기도 버거운 청년들에게 카페 운영까지는 무리일 수 있다. 아직 적응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많은 걸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안단테 안단테. 카페를 위해서라도 적당히 느려야 한다. 아니 어쩌면 보통 빠르기를 뜻하는 모데라토 정도로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립의 기틀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카페 청년들은 느리다. 객관적으로 커피 기술도 부족하고 업무효율도 떨어지는 편이다. 점심시간, 복지관 직원들이 내려와 바빠질 시간이면 복지사들이 2층 사무실에서 1층 카페까지 내려와 일을 도와준다. 몰리는 시간대는 정해져 있고 그 시간만 지나면 한가해지나 바쁜 시간대를 청년들은 버거워한다. 나도 초기에는 그랬다. 어떤 한 청년은 점심시간, 머신 추출과 음료세팅을 동시에 하지 못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여서 복지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기도 했다. 스팀을 치지 못하는 청년이 많아 초겨울까지 아이스로만 나가기도 했다.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나도 어디 가서 욕만 먹고 왔지만 지금 현재 이 카페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했다. 바쁜 시간에는 집중해야 했고 추출과 음료세팅을 동시에 쳐내기 위해 나만의 효율을 정해야 했다.

  겨울인 지금, 따뜻한 라떼류를 위해 게거품이 생성되지 않게 스팀을 치는 기술을 익혀야 했으며 라떼 하트까지 해야 했다.


  내가 일했던, 얼마 못 가 관뒀던, 일반 일터에서의 냉혹한 법칙에서 그래도 이해받고 일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긴 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서 느리다고 갈굼 받고 잘리고 부적응한 청년들이 이해받고 일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여기 카페가 아니었다면 청년들은 다른 곳에서도, 이곳처럼 이해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계선 지능 청년들만을 위한 복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또 이 복지 일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사회 진출을 위한 훈련의 발판이 되기도 해 여러모로 상징적이고 의미가 많다.


  업무에 완전히 적응하면, 카페 운영에도 복지사들과 나란히 의견을 내고 싶다. 복지사들은 조합원이 아니라 외부인이다. 엄밀히 말해서 복지사들은 카페와 협동조합에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복지사들은 그들의 이익이나 번영이 아닌 사명감과 신념으로 청년들을 대신해 카페 운영과 사회적 협동조합에 투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투지와 열정에만 기대기에는 사업 운영은 쉽지 않다. 복지사들은 복지사들의 업무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다. 결국 카페 운영은 나를 포함한 청년들이 해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복지사들이 일일이 애처럼 떠먹여 줄 수 없고 우리도 복지사들에게 받아먹기만 해서는 안된다. 조합원으로서, 자기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는 오롯한 성인으로서, 청년들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안단테. 지금까지는 느려도 됐다. 함께 걷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다. 혼자 해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단테에서 모데라토까지 모데라토에서 알레그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복지 일자리라 하더라도 우리는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없다. 치열해져야 하는 건 복지사들이 아닌 우리 청년들 쪽이다. 느린 청년들에게 앞으로 주어진 숙제와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복지사들에게 언제까지 의존할 수 없다. 안단테 청년들은 아직까지 안단테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도 힘든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으니 그들이 온전히 서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다가 속력이 붙어 뛸 수 있을 때까지 복지사들의 도움과 개입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현실이다.


  안단테 카페가 언제까지 느리게 갈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지금 청년들은 언제쯤 복지사들이 시키는 것 너머를 볼 수 있을까. 나도 경계선 청년이지만 우리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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