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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09. 2023

청년들

복지관과 아이들

  다 함께 사회로 리턴. 줄여서 사다리 활동은 여기 J복지관의 경계선 지능 청년들 대상 사업이다. 총 3개년 사업으로 작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2023년부터는 사업의 최종 목표인 사회적 협동조합 카페 사업만 주력한다. 어찌 보면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과 청년 양성을 위해 사다리 3개년 사업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J복지관은 벌써 수년 전부터 경계선 지능 청년 사업을 시행해 왔다. 서비스 1팀이라는 사업팀이 경계선 지능 청년들을 담당하는데 팀장과 사회복지사 하나 (한분은 사다리 3개년 사업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돼 떠나가셨다)가 10여 명의 청년들을 담당한다.


   청년들과 복지사들은 사업 단톡방이라는 곳에 초대돼있는데 단톡방의 청년들은 서로 소통의 미숙함으로 자주 다투기도 한다. 싸움의 이유는 청년끼리의 다툼이거나 눈치 없는 말 등이다. 청년들끼리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청년들이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사회적 눈치를 봤겠지만 청년들은 사회적 눈치 없이 싸우는 식이다. 대놓고 꼬투리를 잡거나 뜬금없이 시비를 거는 말투로 대거리를 한다. 눈치 없는 말은 또 어떤가. 조합원 청년 중 M이라는 청년은 눈이 많이 와서, 차가 막혀서 일찍 일어나야 해서, 자조모임에 못 나간다고 하는 이유를 꼬치꼬치 쓴다. 카페에 늦는 이유도 차를 놓쳤다고 매번 tmi 식으로 늘어놓는다. 남들이 봤으면 듣기 불편한 핑곗거리를 구구절절 말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종종 책임감이 부족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M이라는 청년의 핑계도 그렇거니와 조합원을 하겠다고 해놓고 힘들면 홀연히 나가버리거나 재작년 인턴십(청년들에게 페이를 지급하고 일자리 경험을 제공) 때는 지각을 상습적으로 하는 식이다. 또 한 H청년은 다른 청년 무리와 알바를 하기로 했는데 아무런 언질 없이 안 나와 놓고 매번 아파서라는 똑같은 핑계를 댔다. H청년과 W청년은 같은 무리로 W청년이 또 그걸 대놓고 단톡방에 저격하며 올려 사회복지 담당자의 중재를 받아야 했다.


  작년 연말, 조합원 회의가 있던 날, 조합원인 한 청년은 복자사들이 시키는 것만 하겠다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 청년은 후에 회의가 끝나고 쿠키를 받아갈 때 쿠키를 떨어뜨렸는데 애처럼 화를 내며 자기가 떨어뜨린 쿠키를 일반 휴지통에 버렸다. 자기가 떨어뜨린 자리를 치우지도 않고 복지사가 치우는 데도 내내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런 행동들에 나도 같은 판정을 받은 청년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 나이도 20대 중반에서 후반, 30 초반인데도 사회적 예의를 미처 교육받지 않은 애처럼 미숙하게 행동한다.


  경계선 지능을 사회적 약자라고만 마냥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성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고 설사 그들의 특성이라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특성이라면 제재를 받고 중재를 받아 마땅하다.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고 약자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약자라고 모든 행동이 다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평등하기 위해서는 평등할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등할 자격. 장애인이든 비 장애인이든 경계선이든 보호는 받고 지원은 받되 평등하기 위한 자격은 필요하다. 최소한의 자립 능력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공동체적 인식이다. 최소한의 인지력이다.

  약자는 몸이지 마인드가 아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성장이 아니다.


  복지관 청년들도 미숙한 부분은 많다. 일을 못하고 이해가 느린 건 죄가 아니다. 경계선 청년들은 일도 서툴지만 아직 사회성이 부족하다든가 미성숙한 태도를 보인다. 분명 안타까운 경우이다. 청년들의 사회적응이 힘든 이유도 지능 문제뿐만 아니라 태도의 문제도 있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할 청년들이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성장을 못하고 있다.


  그들, 경계선 지능 청년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 필요가 있다. 무기력하거나 쉽게 포기하는 습성이 사회에서 받은 그들의 상처 때문인지 학습된 무기력감인지는 모르나 변화하려면 선행해야 할 것은 노력하는 자세다.


  사실 태도란 누가 가르쳐줘서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청년들에게는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고자 해서 의지를 보인 것처럼 청년들에게도 그런 의지가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오롯이 일어설 수 있고 충분히 경제적 자립과 사회 적응을 할 수 있다. 내가 노력형 경지인 것도 그래서이다.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노력한다.

  물론 그 동력에는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는 경계선 지능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수치심도 작용한다. 부끄럽기 때문에, 그들로 정의되는 특성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끄러움은 부정적 감정이지만 때로는 도움이 된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두지 말자. 부끄러움 자체는 죄가 아니니까. 다만 문제가 되는 건 포기하고 안주하려는 자세이다. 다른 청년들이 다소 안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해도 내 삶을 위해서는 안주는 안된다.


  더 나은 것을 위해서는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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