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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10. 2023

카페에서 근무합니다

진실 혹은 거짓

  카페에서 근무해요. 복지관 1층 로비 카페인데, 직원은 아니고요 청년 창업 했습니다. 공동 창업이에요. 급여를 받는 건 아니고 수익에 따라 분배 돼요 사장님 개념이라 보시면 되는데. 네. 사장이라고 보면 되죠. 돈은 아직 저희가 정식 오픈이 아니라... 출자금 벌고 있어요. 주민 대상 교육도 제가 해요.   


  대외적으로 이렇게 소개한다. 친척들한테도, 남들한테도, 남자친구에게도. 남자친구 부모님에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페에서 일하고, 심지어 청년인데 창업해 사장이라고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친척들은 땡땡이 잘 됐다. 대단하다 하는 반응이고 남자친구 역시 내가 카페 사장이고 심지어 카페 내에서 주민들에게 교육도 해줄 만큼 실력이 출중하다는 걸로 내가 능력이 좋은 줄 안다. 가족들과  고등학생 때부터 절친인 10년 지기 친구, 극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경계선 지능인 걸 아는 사람은 없다. 카페 역시 경계선 지능이어서 일하는 줄도 모를 것이다.

 

  모든 내 소개에는 경계선 지능인 것만 쏙 빠져있다. 나의 정체성? 과 내가 일하는 카페의 진짜 정체는 숨긴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과 알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카페에서 일하는 건 평범하다. 10시 아침. 출근을 하면 오픈 세팅을 한다. 음악을 블루투스에 연결하고, 에스프레소 맛을 보며 분쇄도를 조절한다. 여타의 카페와 다른 건, 포스기가 없어서 카드를 받을 수 없다는 점. 현금과 계좌이체만 가능하다. 일일이 주문서를 인쇄해, 수기로 손님이 뭘 주문했는지 개수를 표시하고 계산은 전자계산기를 두드린다. 계산에 서툴고 수리가 많이 약한 나는 간단한 계산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천 오백 원짜리  카페 라떼와 이천 칠백 원짜리 바닐라 라떼 같은 주문은 암산이 안 돼 계산기를 쓰고 계산도 느리다. 카페 라떼 두 개 주문하면 오천 원이 되는 것은 공식처럼 외워둬야 한다.

  돈을 잘 못 거슬러 줄 때도 있다. 이천 오백 원짜리 카페 라떼를 시킨 손님이 오천 오백 원을 줄 경우 삼 천 원을 거슬러 줘야 하는데, 내 편의를 고려해서 오 백 원을 따로 준 걸 파악하지 못하고 그럴 땐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막혀버린 것이다.

  

 계산이 느려 우물쭈물하고 있는 우리를 보다 못한 직원분들이 대신 계산을 해주기도 한다. 직원들은 계산이 우리보다 빠르고 우리가 느리다는 걸 안다. 손님이 판매를 하는 사람 대신 계산을 하는 풍경은 안단테에서는 익숙하다


  오후 내내 음료 제조와 판매를 하면 4시쯤 냉장고 청소를 시작하고 5시쯤 본격적으로 마감을 한다. 냉장고나 머신 청소 같은 큼직한 청소뿐만 아니라 설거지, 수건 빨래 등을 하고 바 청소를 한다. 재고 리스트에 재고를 체크하며 수량도 파악한다. 오픈이든 마감이든 일반 카페와 그럴듯하게 비슷하다.


  내가 카페 내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힘든 냉장고 청소도, 커피 구정물이 손에 튀어가며 하는 머신 청소도 아닌, 하루 수익 정산이다. 얼마 나가지도 않은 주문서를 펼치고 총합, 현금, 이체를 적는다.

  현금통에서 현금을 세고 구만 사천 칠백 원을 빼서 주문서에서 계산한 그날 현금을 맞추는 시제 정산은 내겐 고역이다. 늘 시제가 맞지 않아 복지사들을 내려오게 한다. 수요일은 복지관에서 친해진 언니가 주문 일과 마감 정산 일을 도와주는데 언니도 똑같다. 늘 시제가 빵꾸가 난다. 노련한 복지사들이 정산을 하면서 시제가 정정되는 게 수없다. 일반 카페에서 이렇게 마감 정산을 했다면 어땠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느린 청년들이 일하는 안단테이지만 다른 카페와 달리 커피 값이 상당히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메리카노가 이천 원, 카페 라떼가 이천 오백 원, 바닐라 라떼 이천 칠백 원 하는 식으로 다른 카페의 커피 값에 반값도 안된다. 어르신들의 원픽 메뉴인 다방 커피라는 믹스 커피 메뉴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는 시그니처 메뉴나 다를 바 없는데 단돈 천 원이다.


   아직은 메뉴도 열몇 가지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나름 신메뉴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딸기 라떼나 석류 에이드, 말차 라떼 같은 메뉴를 추가했다. 각각 삼천 오백 원, 이천 오백원 한다. 신메뉴는 계속 개발해 나갈 예정으로 메뉴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 신메뉴등 아니든 모두 사천 원도 넘지 않는 가격대다.

  우리들의 미숙함을 싼 가격으로 승부 보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은 느린 청년들이 일하는 카페의 충분한 매리트로 밀고 있다.

 

  물론 수익은 당연히 나지 않는다. 손님도 주로 점심때 몰리는 직원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하루 매출이 이 삼만 원대인 경우가 많다. 낮은 가격대로 음료값을 책정한 만큼 수익률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케이터링 사업도 하고 베이킹 메뉴도 추가하고 단체 주문도 받고 복지관 프로그램 시 모든 재료를 전담 제공하는 등 수익성을 늘리는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수익 분배까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카페 일과 진짜 실상은 이렇듯 판이하다. 남들과 남자친구에게는 그럴듯하게 카페를 소개하고 일반인인 그들은 대단하게 나를 바라보지만 거품 아래 실제는 빈약하고 부실하기 그지없다.  자신과 안단테 카페는 뻥튀기를 하듯 한없이 부풀려진다. 부풀려지는 만큼 진실은 저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사실을 말하면 어떻게 될까.


  카페에서 근무합니다. 경계선 지능 카페에서요. 직원은 아니고요 복지사 분들이 창업 준비 다 했고 저는 훈련생, 조합원으로 합류만 했습니다. 급여를 받는 건 아니고 수익에 따라 분배되는데 수익이 더럽게 안 나네요. 사장님 개념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저희가 사장으로서 실제로 한 건 없습니다. 수익 분배도 언제 될지 참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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