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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12. 2023

경계선 지능입니다만

일반인이라는 기준

  현재 서른. 2023년 만 나이 기준 스물아홉인 나는 분별력이 떨어지지도, 사회성이 부족하지도 않다. 감정 표현이나 소통에 미숙함을 보이지도 않는다. 케이크를 잘라 본 적은 없지만  가위질이 서툰 것도 아니다. 과거의 나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

지능이 경계선이라고 모든 게 경계선은 아니다. 아직 사회에 제대로 진출해 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복지 카페에서 나는 부족함 없이 일을 잘하고 있다. 특별하게 큰 실수를 하는 것도 아니다.


  경계선 지능, 느린 학습자. 사회에서 우리를, 나를 명명하는 지칭이지만 분명 사회가 특징 지은 특성에 안주하지 않고 나처럼 노력하는 경지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일반인처럼 보일 것이고 그들도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사회가 정의한 일반인, 일반의 기준은 다소 모호하고 폭력적인 면이 있다. 정상과 보통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일반인지 애매하다. 모호하고 전적으로 추상적인 기준이지만 우리는 그 기준을 확고부동하게 믿는다. 기준에서 벗어나면 모두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편견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사실 정상이라는 것도 흐리멍덩한 기준만큼이나 주관적이다. 어쩌면 일반이라는 기준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내재한 편견의 기준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고유하고, 특성이나 지능의 편차가 다른 개인에게 일반이란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모순적인 인간임을 밝힐 수밖에 없겠다. 사회 정의(意義) 특성상 일반에 속하지 않는 경계선 지능인 나는 일반인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그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평균 규격에 몸을 맞추려고 살을 구겨 넣는 경우처럼. 사실 잘못된 건 내 몸무게나 살집이 아니라 기준 그 자체가 그릇된 것이지만 평균에 대한 과도한 맹신은 평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자체를 교정하지 않는다.


  일반에 가까워지고 우월해지려는 노력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특성. 신포도처럼 저만치 먼 위에서, 따먹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위치에서, 나를 수없이 좌절하게 했다.


  국어능력시험에 욕심이 있어서 목을 맨 시절이 있었다. 준비도 무리해 가며 했지만(고액 과외를 동원해서) 무급이 나와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이 국가시험에 절실한 이유는 내게도 우월한 스펙이 하나 있었으면 해서였다.

  어떤 청년들은 한자 1급이 있고, 영어나 일본어 같은 어학 능력이 우수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 경계선 지능임이 티 나는 청년들인데도 청년들의 개인 능력은 원석처럼 숨겨져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뒤져서는, 더 잘나기 위해서는 나만의 잘난 능력이 있어야 했다. 나는 사회적으로 경계선 지능인 게 티 나지 않았으나 특출 난 개인 능력이 없었다. 경지가 티 나는, 경지임이 확실한 청년들 중 일부 청년들은 내가 갖지 못한 우월함이 있었는데 그걸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내게는 모든 경계선 지능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라떼아트의 경우에도 그렇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청년도 성공시키는 것을 보며 면 하트라도 완성해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고 절망했다. 카페의 우유와 원두를 무한정 써가며 연습해 복지사들의 제재를 받기도 해 가면서 말이다. 


  결벽에 가까운 강박. 완벽에 대한 강박은 열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지우기 위한 내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경계선 지능은 바꿀 수 없는 내 열등함이다. 부서지기 쉬운 여리디 여린 내 자존감은 경계선 지능이라는, 단단하고 거친 망치에 늘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린다. 경계선 지능은 내게 약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내게는 그 정체성이 나를 무너뜨리는 최약점이다.

 

  나는 오늘도 일반인이라는 규격에 나를 맞춰 넣기 위해 열심히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한다. 일반인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를 일삼고 좌절한다. 경계선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내면의 소리는 악을 쓴다. 일반인 남자친구 앞에서는 발각되기만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나약한 범죄자처럼 불안에 떤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일련번호를 붙이고 사이클처럼 돌아가고 있다.


  일반이라는 기준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지만 나는 누구보다 그 기준을 맹신하고 추종한다. 나 같은 정상에서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인간들을 아예 배재하고 매우 지엽적인 기준에 따라 일반으로 분류된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나는 내 전부를 건다. 일반인들은 본인들이 일반인에 속해있어 모르겠지만 일반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과 권위가 있다. 일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기준에 의존하는 힘은 막강해진다.


  경계선 지능이지만 경계선 지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롭고 수치스럽다. 오늘도 나는 내 자신을 숨기고 일반에 가까워지기 위해 몇 겹으로 나를 싸맨다. 겹겹이 쌓인 결들로 숨 막히더라도 경계선 지능으로 보이느니 숨이 막히는 쪽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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