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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20. 2023

영어공부

영어의 길

  그저께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로 손님도 없는 안단테 카페에서, 이제는 삼성의 재료비 지원도 끊겨 더 이상 원 없이 라떼아트 연습도 못하는 마당에 하릴없이 카페에서 시간만 죽일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출근하지 않는 애매한 상황이라 시간이 남아돈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건 날백수랑 다를게 뭔가. 복지관 청년들 중 한자, 영어, 일본어 같이 어학 능력이 있는 청년들도 있는데,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외에 별다른 스펙도 없는 나는 그 청년들한테 뒤진 채 놀고만 있을 수 없다. 경계선 청년들이긴 하지만 그들이 어디서 그런 능력을 키웠는지 궁금해하기 전에, 더 도태될 수는 없었다.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내 자신한테 한심했으니까. 대외적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리기 차마 부끄러워서라도 영어 공부 같은 자기 계발은 해야만 했다.


  그날로 교보문고에 갔다. 영어 학습교재들이 넘쳐났고 거기서 내 눈에 확 띄는 책은 찾기 힘들었다. 너무 패턴 위주의 회화책 투성이이거나 내용이 빈약하거나, 수준 깨나 어려운 영문법 책이거나 해서 집어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그나마 커스에서 번역 배포하는 그래머 게이트웨이 베이직이라는 교재가 괜찮아 보여 그걸로 골랐다. 썩 맘에 들지는 않았으나 가격도 합리적이고 그런대로 합격점을 주고 샀다. 수익 배분이라도 돼서 돈이라도 있었으면 학원에 등록하거나 학습지를 하거나 인강을 듣거나 하는 식으로, 자본이 만든 방식과 도구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수익 분배는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10만 원도 채 남지 않은 통장 잔액은 곧 빠져나갈 교통비까지 치면 잔액 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어 공부는 막막하기만 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어 기초 영상들은 넘쳐났으나, 서점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헤맸다. 유튜브에서 영어 독학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역시 콘텐츠는 쏟아졌는데, 될 때까지 영어 영상물을 보며 쉐도잉을 하거나 문법책 하나를 통으로 외우는 등 하나같이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하기 힘든 방식들이었다. 그들이 전시하는 영어 독학 방식은 인간 승리에 가까웠다. 나 같은 경지에게는 그 방식마저 어렵고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영어는 힘들게 해야 느는 것이었다. 영어가 유창하게 되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들은 산처럼 나를 압도했다. 그들이 전시했던 방식 중 많은 추천을 받은 쉐도잉은, 관련 영상을 보고 5분도 안 돼서 껐다. 대사도 너무 빠르고 들리지도 않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미드 같은 걸 틀고 될 때까지 따라 말하는 게 쉐도잉의 본질이었다. 미드 한편이 40분 내외인걸 감안하면 그 40분 동안, 포화처럼 쏟아지는 영어권 국가 사람들의 영어를 듣고 따라 말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미드는 시즌제인데 시즌 한 편당 10편이 넘어가는 걸 생각하면, 전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었다. 3년 전에 나는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강의 유튜브를 몇 개 구독해 놓고 꽤나 열심히 연습한 적이 있다. 그때도 힘에 부쳤다. 카페에 커피 냄새가 살갗에 배일 때까지 앉아서 공부했으나 결국 영어는 늘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으나 영어의 압박이 크다. 우선 내 수준부터가 처참하다. 부끄러워졌다. 영어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데 창피했다. 경계선 지능이 부끄러웠던 것처럼, 내 무능을 바라봐야 하는 것도 언제나 치욕스러울 정도로 수치스럽다.


 그 와중에도 나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처럼 탁상에서만 영어를 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내가 원하는 영어는 독해가 아니라 회화니까 영어를 많이 발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건 유학이겠으나 택도 없었다. 옛날에 했던 펜팔이 떠올랐다. 외국인 친구 사귀기. 한국에서, 한국어로, 한국사람들하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영어권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경로를 검색했고 언어교환 어플인 헬로톡을 알게 됐다. 헬로톡에서 현재 나는 두 명의 외국인과 소통을 하는데 가장 많이 소통한 외국인은 멕시코에 사는 아리스라는 여성이었다. 스페인어 모국어에 영어가 능통한 그녀는 엔지니어였는데 서툰 내 영어에 배우는 과정이니 실수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오늘 대화한 것이니 이 여성과 얼마나 대화가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내겐 그녀가 고마웠다. 모르는 부분을 영어로 물어야 하고 그녀에게 장문의 영어 답변을 받는다. 영어를 적고 해석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이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영어를 많이 배울 수 있겠다 싶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게 묻는다면 솔직해지겠다. 우월해지고 싶어서. 올해 목표도 회화능력시험인 오픽에서 ih 정도의 등급을 따서 스펙을 만드는 것이니 만큼 내 목적은 분명하다.


  어학 능력이 있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에 비해 티가 잘 나지 않는 데도 나는 티만 안 난다 뿐이지 능력면에서는 그 청년들보다 뒤처지고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싫다. 특히 내가 소속돼 있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 커뮤니티에서 뒤처지는 건 참을 수 없다. 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게 낮은 스펙은 늘 경계선 지능과 함께 따라다니는 불쾌한 꼬리표이다. 나는 스펙을 얻어 남들 앞에서 자부심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 내 자부심. 자존감. 내게는, 늘 강조하지만 우월함이 있어야 했다. 자부심만큼 인간의 명예를 지탱하는 것도 없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인간에게 명예는 삶의 목적 그 자체고 인간성을 이루는 요소다.

 

  영어를, 앞으로 얼마나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월함에 대한 갈망이 크기에 쉽게 내려놓지는 않으리라. 아니면 아주 무너져 내린다거나. 실수했다고 세상의 끝은 아니라고 말했던 상냥한 멕시코 여성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로 버티기에도 영어 공부의 길은 너무 지난하다. 내게 영어의 길은 우월함을 향해 가는 길이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내겐 또 한 번의 비참을 맛보게 할 쓰라린 경험이 될 것이다. 화두는,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고 영어를 정복하느냐.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고 우월해질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영어 스펙을 쌓아서, 경계선 지능에서 탈피하고 우월해질 수 있느냐. 갈 길이 너무 멀어서 그 길이 불가능처럼 보일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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