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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25. 2023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경계선 지능성의 극복

  자신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는 건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자신의 무능과 마주할 때마다 사람은 초라해진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만큼 비참한 말도 없다. 얼마나 재주가 없으면 구르는 것을 재주라고 할까. 사실 이 말은 원래 누구든 재주 하나는 있다는 말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굼벵이 같은 사람에 대한 조롱이었을 것이다. 구르는 것이라도 재주로 쳐줄게 하는. 사실 재주가 정말 많았다면 굳이 구르는 것까지 재주라고 말했을까.


  헬로 톡으로 외국인과 소통한 지 며칠이 지나간다. 나는 내가 글쓰기에 대해 예민한 감각이 있어 한국어는 잘하는 줄 알았다. 경계선 지능인 내게 유일하게 높게 나온 지능이 언어 지능이기도 했고 국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했기에 한국어는 꽤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무참히 무너지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외국인이 은는이가에 대해 묻는 순간부터, 나의 신념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물은 한국어는 이랬다. 우리 딸이 예뻐요와 우리 딸은 예뻐요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가와 은/는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은는이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내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어를 알려주겠다고 호기롭게 제안했었는데 기본적인 문법에서부터 설명을 못하고 막힌 것이다. 얼른 인터넷에 문법을 찾아봤다. 나는 주격조사와 보조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은는이가를 통칭해 흔히 주격 조사라고 알고 있지만 주격 조사는 주어 뒤에 붙어 주어의 격을 나타내주는 조사로. 목적격 조사, 부사격조사처럼 격조사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이/가만이 주격조사이다. 은/는은 보조사란다. 그럼 보조사는 무엇인가. 문법에서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조사로서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주지 않는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생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밥 먹어에서 는을 빼고 엄마 밥 먹어라고 할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 딸이 예뻐요와 우리 딸은 예뻐요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아가 이/가와 은/는의 차이는 무엇인가. 거대한 소통의 벽이 느껴졌다.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어떻게 설명을 잘 전달하지.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로 그녀에게 이해시키는 건 환장할 노릇이었다.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 설명했다. 거기서 주격조사(nominative case)와  보조사(auxiliary postpositional) 번역하는데 우리말의 품사인 조사(助詞)로 번역되는 게 아니라 조사하다의 그 조사(調査)라는 뜻인 investigation로 번역돼, 품사가 아니라 뭘 조사하고 수사한다는 뜻으로 전혀 생뚱하게 전달되는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나는 전혀 생뚱한 말로 은는이가조차 제대로 설명 못하는 무능한 한국인이 됐다.


  찾아보니 이/가는 주격조사로서 서술부의 행동 주체 자체를 강조하고 은/는은 주격이 아닌 특별한 뜻을 더해주는 뜻이니 예쁘다는 서술부의 주어가 강조되는 게 아니라 주어의 서술부만 강조되어 은/는을 쓴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딸이 예뻐요, 즉 이/가는 다른 누구의 딸도 아닌 우리 딸이 예쁘다는 뜻이고, 우리 딸은 예뻐요, 은/는은 우리 딸이 예쁜지 안 예쁜지 서술이 중요한 뜻이다. 한국어 사용자들은 구별하고 사용하지 않는 맥락이다.

  

  게다가 이/가는 화제의 대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은/는은 그 화제가 한번 나온 뒤 나중에 다시 언급할 때 쓰여 영어 사용자들은 그 뜻을 a와 the로 구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는~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부끄러웠다. 은는이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한국어도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냥 모국어로 써온 한국어조차 못하는 나는 정말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바리스타 일을 하는데도, 우유에 하트도 못 띄우고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한국어도 바리스타 일도, 뭐 하나 잘한다고 내세울 수 없다. 경계선 지능이라고 판정을 받았을 때도, 라떼하트에 실패를 했을 때도, 은는이가를 설명 못할 때도 나는 수치스러웠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절실히 깨닫는다. 거듭된 실패는 그것을 내가 얼마나 못하는 상태인지 일깨워준다. 라떼하트를 실패함으로써 나는 라떼하트를 못한다. 은는이가를 제대로 설명 못함으로써 나는 한국어를 못한다. 나는 커피 일도 못하고 한국어도 못한다. 잘하는 게 없다. 나는 그저 구르는 재주밖에, 아니 재주라고 할 수도 없는 습관만 있는 굼벵이다.


  스펙 하나 없고 잘한다고 내세울 수 있는 특징들이 없는 나를 사랑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무미건조하고 무능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떼 아트를 성공시키고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특기 하나 없는 내 평범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나도 남들처럼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일을 잘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전을 위해 나아갈수록, 그와 반대되는 작용은 늘 나를 따라왔다. 영어를 배움으로써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얼마나 부족한지 역설적으로 알게 된다. 나는 영어만 못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도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무능과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겹고 수치스러운 건,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 자체 보다도, 경계선 지능에 부합하게, 일반인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과 경계선 지능에 부합하는 것은 은는이가의 차이만큼 미묘하지만 크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판정은 그 자체로서는 영향력이 없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경계선 지능의 특징들이 경계선 지능을 정의하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이어도, 경계선 지능의 특징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경계선 지능은 효력이 없다. 경계선 지능으로 티가 나니까, 경계선 지능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 인간이라는 학명에 생물학적으로 속한다고 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이  되려면 인간다운 특징, 행동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성, 인성이라 한다.


  경계선 지능이 아니라 경계선 지능성. 그것이 내가 경지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아니 모든 경계선 지능을 결정한다. 내가 경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경계선 지능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이 발현하는 특징, 경계선 지능성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반인처럼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경계선 지능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에 속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경계선 지능의 특징인지 자꾸 일반인보다 학습이나 지식이 느리거나 떨어진다. 절망스럽다.


  영어 완전 정복의 길과 경계선 지능의 탈출은 갈 길이 멀다. 일반인이라면 그저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면 되지만 경계선 지능이라면 나는 경계선 지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없이 증명해야 일반인이 되는 것이다.


  올해 안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경계선 지능을 극복해야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는데 나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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