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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31. 2023

라떼하트

애증의 라떼하트

  라떼는 말이야 하트를 먹는 늪이야.

오늘도 라떼 위 하트는 라떼 속으로 빠졌다. 벌써 몇십 번째 실패다. 이쯤 되면 에스프레소는 우유거품을 먹는 늪이다. 에스프레소가 도화지라고 한다면 우유거품이란 물감으로 하트를 그려야 하는데 그게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에스프레소 위에 속절없이 물처럼 흐르는 우유거품을 바라보면 내 안의 하트가 부서지는 걸 느낀다.

  결하트나 튤립이나 로제타 같은 화려한 아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트 하나 띄우는 건데 어지간히 실패한다. 이쯤 되면 내 손이 똥손임이 분명해지는데 내 손이 똥손인 건 하루이틀이 아니라 더 씁쓸하다. 실패한 라떼를 마시는 혀끝의 맛이 그렇게 쓸 수가 없다.


  남들에 비해 뭐든 습득력이 느린 나는 손이 아니라 똥을 장착하고 다닌다. 라떼하트를 하기 위해 개인 교습부터 개인 커피 대여실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어지간히 했다. 남들은 이 정도면 하트가 아니라 백조도 그렸겠지만 나는 아직도 하트를 그리지 못한다.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들이고 감정도 많이 소모했다. 닳고 닳을 정도로 연습했지만 남는 건 닳디 닳아버린 내 마음 밖에 안 남았다. 하트를 완성하기 위해 우유를 몇 통이나 낭비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허비한 우유를 모두 모았으면 우유 수영장을 만들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돈으로 차라리 피부과에 투자했으면 내 피부는 우윳빛깔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안 되는 건지 특정한 대상 없이 원망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복지관 카페에서 반복 연습을 할 수 있었으나 그것도 작년 말 잠깐 뿐이었을 뿐, 올해부터는 삼성이라는 천군만마가 철수해 우리는 사지에 몰렸다. 더 이상 재료를 낭비하지 말라는 복지사들의 공지가 떨어져 반복 연습을 할 수도 없다. 하긴, 반복 연습을 한다 한들 실패만 반복될 뿐이다. 노력을 하면 그에 대한 습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노력을 할수록 전보다 더 망가지는 걸 보면 지치다 못해 화가 난다.

 

  손님한테 내갈 때마다 실패한 하트를 컵 뚜껑으로 가리기 급급하다. 라떼하트를 못해도 된다는 태평한 복지사들의 소리는 그들이 지금까지의 수익도 정산 안 해주는 무책임함 만큼이나 책임 없는 말이다. 내가 여기 카페에서만 일하고 끝낼 것도 아니고 다른 카페에서 근무하고 개인 카페까지 차려야 하는데 내 미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그들만의 말이다. 알아야 공감을 할 수 있는데 내 속도 모르는 복지사들은 공감이 아니라 태평함으로, 그 무심함이 나를 상처 입힌다. 요즘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상처를 받는다.

 

  사랑이 그토록 힘들어서 하트가 안 그려지는 것일까. 지금 나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 에스프레소에 하트를 그리는 건 안 되나 보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못해서 그런 걸까. 마법의 힘으로,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면 하트도 그려지려나.


  습득하는 실력이 남들보다 느려서, 내가 경계선 지능이라 지능 발달이 안 돼서 손 기술에 요구되는 능력도 없는 것일까.  사실 나는 라떼하트 뿐 아니다. 어느 분야든 이랬다. 습득이 느리다 못해 처참했다. 내 손목에 있는 자해흔들은 실패의 훈장이다. 컴퓨터 그래픽도 그랬다. 지금의 라떼하트처럼, 남들보다 익히기도 느렸고 자격증도 줄줄이 떨어졌었다. 아, 이제 깨달았다. 나는 이런 인간인가 보다. 잘하는 것보다는 못 하는 게 익숙한 사람. 뭐든 못 하는 게 디폴트 값인 사람. 이쯤 되면 실력이 아니라 유전자다.


  오늘은 글을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글을 써서 감정을 해소하고 정화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내 감정을 드러내고 내가 외면하고자 하는 사실을 기록한다는 건 지긋지긋한 되새김의 연속일 뿐이다. 끝없이 지겹다. 글이 해소가 아니라 진드기처럼 끈적끈적하고 지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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