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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Feb 22. 2023

면접 기행기

사회진출

   알*몬 알*천*등 알바 사이트에 닥치는 대로 자사 이력서를 넣었다. 주로 카페 관련 업무 쪽으로 지원했다. 복지관 카페 경력이라도 경력이 있어서 인지 모르겠으나 연락은 10대 6으로 많이 오는 편이었다.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았다. 그러나 면접 내내, 내 짧은 근무기간들과 복지관 카페에 대한 담당자들의 선입견이 따라왔다

 

  왜 복지관 카페를 그만두신 거예요? 경력이 짧은 데 이유가 있나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고 때론 따지듯 물어보는 데도 있었다. 그도 그러려니 경력이 짧은 이유는 업장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일을 너무 못해서 상급자와 동료의 갈굼과 괴롭힘을 버티다 못해 스스로 그만둬서 그런 것이고 복지관 카페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복지 일자리라는 명색이 무색하게 9개월간 무급에다 앞으로 최저 시급이나 보장받을 수 있을지, 미래가 없어서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솔직하게 할 순 없었고 내 혀는 구렁이의 비단 결 같은 비늘처럼 청산유수로 움직였다.

  아 네. 제가 개인 카페를 차리려는 목표의지가 뚜렷해서요. 복지관 카페는 주에 2번 나가는데 너무 짧고 개인 카페를 차리기 위한 더 큰 꿈과 계획을 위해서 그만둔 거예요. 네네. 당연하죠. 저는 1년 이상 일할 거고요. 제가 대학을 오래 다녀서...  네. 사실 소설 공모전 준비하느라 일보다는 제 진로를 더 중요시했네요. 지금은 아예 카페 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오래 근무할 생각입니다.

  연락  곳은 단 두 곳. 한 곳은 카페 업무도 아니고 홀서빙 업무였다. 지역 핫플레이스라 손님이 포화상태로 몰릴 가능성이 농후하며 루프탑까지 3층이나 있어서 내가 근무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소위 빡셀 가능성이 커서 고사했다. 다른 한 곳은 집과 30분 내외 거리였는데 30분 가까이 내 이력을 못마땅해하며 압박했다. 여름이면 손님이 현관문 너머까지 줄 서 있고 내가 맡는 직책이 매니저 업무라 파트타이머 관리까지 해야 하는데 이 일을 하실 수 있겠냐며 한숨을 쉬는 담당자를 보며 여기는 돼도 안 간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 외 안내데스크 업무라든지 백화점 라운지 업무라든지 내 구미에 맞고 쉬워 보이는 업무 등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를 마음에 든다고 대놓고 얘기한 데 역시 기별이 없었다.

   

  너를 공감 못해. 그동안 계속 놀 거야? 아리야. 중요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 한순간이다. 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아?

 돈도 못 버는 자식 놈들. 두 놈이나 퍼질러 놀고 있는데 내 명에 못 살지. 네가 지금 돈 번다고 말할 수 있어? 최저 200은 받아? 어디서 팔푼이들이나 하는 일 하면서 일한다고 해?

  내 미래를 눈물겹게도 생각하는 내 인생의 두 남자들, 남자친구와 아빠의 말들이 내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나를 몰아세우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남자친구는 내게 감정을 쌓아뒀다고 얘기했다. 너에 대한 내 감정은 일종의 시험 점수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싸했다. 그 말에 정이 떨어지면서 서운한 감정을 느낀 것은 내가 예민한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매일 악다구니를 퍼붓는 아빠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기도 했다. 돈 한 푼 없는 늙은 자신에게 빌붙어 먹는 자식들로만 나와 오빠를 취급하며 남이면 절대 못할 말을 자신의 자식에게 쏘아붙였다. 알바 하나 안 하고 쌩으로 몇 년을 논 백수 오빠와 나는 당신의 눈에 다를 게 없었다. 아빠의 예민함과 히스테리는 극에 달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사회에 진출해야 했다. 아빠의 폭언과 남자친구의 무시를 벗어나 나 스스로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복지관의 복지에 의존해서는 안 됐다. 복지관 카페는 결국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닐 것이고 사업자등록이 모두 완료돼 카페가 정식 개업을 한다 도, 복지관 카페가 경계선 지능 카페라는 정체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복지 일자리로 시작한 카페는 약육강식의 사회 법칙을 따르는 일반 카페와 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느려도 괜찮고 못해도 방어해 줄 복지사들이 있다. 일자리의 시선 자체가 우리를 돈을 주고 고용한 직원이 아닌, 복지로 바라본다. 그러나 일반 카페는 그렇지 않다. 그 엄청나고 확실한 차이를 나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자신이 있어야 한다. 일반 카페에서 나는 일반인으로서 돈을 주고 고용된 직원이 되고 그 시선에 복지란 없다. 못하면 경고를 받다가 잘린다. 나를 대체할 더 나은 인력들은 쌔고 쌔게 존재한다. 일반 사회에서는, 우리가 얼마만큼 보호받아야 하고 성장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고용된 시급만큼 일을 할 수 있느냐, 얼마만큼의 습득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 같은 논리만 중요할 뿐이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장애 요소는 일반 사회로 진출하려는 순간 철저히 버려야 할 요소다. 지금까지 근무했던 정신과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물가에 내놓은 서툰 자식이 아니라 험난한 바다에 직접 들어가 거친 파도에 직접 부딪히며 살아가는 독립된 개체가 되어야 한다. 그럴 자신이 내게 있는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지금의 내게 적절치 않다. 그럴 자신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이건 선택이 아닌 의무다. 여기서 주춤하고 다른 청년들처럼 복지관 카페에만 의존한다면 경제적 자립은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에 진출할 용기와 능력이 없어 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 밖에 안된다. 그건 내 향후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복지관 카페를 벗어나길 선택했다.


※ 백화점 라운지 카페 업무는 2월 19일 일요일 기준으로 합격했다. 주말 근무라 복지관 카페에 다니는 건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합격한 업무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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