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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Feb 20. 2023

[연재] 소설_완결

경계선 지능 소설

  참 힘드셨겠어요.

  집으로 돌아온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떠한 기척 하나 내보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 강아지 왔어. 하는 엄마의 다정하고 친근한 말도 일갈하고 방으로 들어가 서랍장에 쌓여있던 수면제 열 세알을 헤아렸다. 그 백색의 알약을, 작은 입을 한껏 벌려 털어 넣기까지 망설임은 없었다. 수년간 그녀가 하지 않은 금기에 가까운 자해 행동이었다.


  잠의 아가리에 삼켜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정신을 잃듯 깊은 잠 속으로 의식은 곤두박질쳤다. 그녀의 무의식에서 생성되는 꿈은 악몽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꿈도 아니었다. 이상하고 괴이하면서 처연하기까지 했다.

  

  J역을 지나가는 전철. 저 멀리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껴안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그녀에게 했던 사랑에 가득 찬 몸짓과 눈짓. 그녀는 얼른 전철에서 뛰어내려 남자친구, 이제는 남인 사람에게 달려갔다.

  안겨있던 여자의 얼굴은 검게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자의 얼굴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얼굴은 경멸이 서려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멸시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랑도, 증오도 아닌 그 싸늘한 표정에는 어떤 다른 감정도 없었다. 태연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그 표정에 그녀는 뜨거운 치욕을 느꼈다.

  남자의 경멸 어린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부서지고 깨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저능아 같은 년.

  그렇게 그녀에게 내뱉는 한 늙은 여자가 서있었다. 그러다 공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참 힘드셨겠어요. 외래진료는 어디서 받아요?

  수유요. 수유.

  외래진료 잘 받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입원은 안 해도 돼요?

  집에 갈 거예요. 집에 갈 거라고요.


 공간이 뒤틀리더니 그녀의 더러운 방 안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비몽사몽 했다. 눈을 뜰 수는 있었으나 이곳이 생시인지는 불분명했다.


  너라면 만나겠어?

  너라면 만나겠어?

  .... 나 경계선 지능이야.


  그녀의 눈앞에 하얀 죽이 놓여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에 만 밥이었다. 어머니는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그녀의 입에 밥을 연신 밀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뜨거운 김이 그녀의 눈동자에 안개처럼 스며들었고 그녀의 정신은 안개가 걷히듯 또렷해졌다.

  오늘이 며칠이야?

  9일 금요일이었다. 꼬박 하루 가까이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이 모든 건 정신을 잃었을 때 꾼 꿈이었다.  그러자 불현듯 떠올랐다.

  아 민재.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찾았다.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 그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의 목소리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연락했었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뭔가를 캐묻고 싶은 걸 겨우 참아내는 것 같았다.

  넌 깨어나자마자 남자친구냐.

  뒤에서 어머니의 질책이 꽂혔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자친구의 어조에서, 그녀가 한 말까지는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묻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녀는 말했다.

  헤어지자.

  그게 할 소리야? 솔직하게 다 말해봐 하는 남자친구에게 우린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 같다고 했다. 나한테 뭐 더 숨기는 거 없냐는 물음에 지금까지 미안했다고 답했다. 통화는 어쩐지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동동 떴다.

  솔직히, 아리야. 너 조금 티 났어. 나 사실, 거짓말 진짜 싫어해.


   남자친구와의 인연도 거기서 끝이었다. 거짓말. 밝히기 싫은 것과 의도적 거짓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존재할까 생각했다.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침묵도 의도일까. 그럼 어디까지 밝혀야 하나. 아니, 밝혔으면 그는 지금쯤 그녀의 남자친구가 됐을까. 자신이 죄를 지었는가. 정신지체도 아니고, 자신이 뭐 몹쓸 짓을 숨겼는가. 어떤 조건도 없는 순수한 사랑을 속삭인 그였다. 그러나 그녀가 사실은 그의 환상 속에 있던 예쁜 일반인 여자가 아닌, 낮은 지능의 여자였다는 사실에 손쉽게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여태껏 말해왔던 사랑이 알량해 그녀는 코웃음이 났다. 너가 사랑하는 여자가 경계선 지능인 것은 안 되는 거구나. 자신이 낮은 지능이라는 사실까지 사랑하기에 싫다 이건가. 그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고 사랑했던 걸까. 그 사랑이 정말 순수했던 걸까. 그녀는 몰아치는 생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머리보다 감정이 파도처럼 치솟아 올랐다. 이렇게, 끝이었다. 남자친구와 친구.  우정과 사랑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자신은 자신일 뿐이었으나 그 자신이 온전한 자신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조건이 필요했다. 일단 세상이 정의하는 정상에 속해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인간의 정의가 언제부터 '정상'에 있었는지, 그 '정상'을 누가 정의하는 건지, 그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 알 수밖에 없는 불합리를 느꼈다.


  10만 원이 땅에 떨어져 오물을 뒤집어써도, 사람들은 손을 뻗어 10만 원을 주저 없이 집을 것이다. 10만 원은 큰 가치가 있는 돈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일단 10만 원짜리가 아니었다. 10만 원도 아니고 1000원짜리에 불과했다. 자신의 가치보다 곱절은 큰 오물을 뒤집어쓴 꼴이었다.


  세상의 경계선에서 그 누구도 그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계는 균열이었고 균열은 무너짐과 불완전함의 상징이었다. 경계를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것이고 설사 무너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야 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불안정했고, 불안정해서 불안전했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안전의 욕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불안전은 내부의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불안전함은 모순적이게도 그녀의 파괴욕을 키웠다. 어차피 안전한 곳이란 어디에도 없다. 위험해지자. 무너질 것 같으면 차라리 무너뜨리자.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혀를 깨물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이가 송곳으로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혀를 깨물어봤자 침만 나왔다. 살이 적은 혀 끝을 깨물어봤으나 곧 말았다.        

  뭐 하는 짓이지?

  곧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이 터지자 곧 울음이 터졌다. 웃는 순간에 울음이 나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울었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그녀는 그때 알았다.


  계속 웃고, 울었다. 방안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뭐 하는 거냐? 묻는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웃고 있어. 어머니의 인상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주름보다 더 깊게 인상을 구겼다. 너 미쳤니? 울긴 왜 또 울어? 그렇게 다 뒤집어 놓고 또 울어. 그녀는 계속 웃었고 울었다. 그녀는 갑자기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느껴지는 희열인 건지 감정의 한 군데,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웃고 울 수록, 경계의 균열이 뭉개져 무너질수록 감정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희열감에 휩싸였다.

  어차피 자신은 무너졌다. 잃을 것은 다 잃었다. 더 잃을 것은 없었고 더 붙잡을 가치도 없었다. 존재에 묻었던 오물이 더 큰 오물로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경계선 지능이든, 정상이든, 장애든 지금의 그녀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중요해진 사실이 있었다. 세상에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쉽게 잃고 사라질 것을. 아니, 처음부터 잃을 것은 없다는 것을.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짓밟히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거기서 다른 가치가 생겨났다. 웃고 우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무에서 받아들이니 되레 가치가 명료해졌다.

  그래도 이 순간은 살아있구나.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누구에게 속이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아있구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진실하구나


그녀는 한참을 울고, 웃다 다시 울고 웃었다.

다른 어느 순간보다 후련했다.


※본 소설은 사실과 다른 창작과 재구성 과정을 거친 이야기이며 에피소드와 인물 성격, 이름 등은 재창작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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