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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Feb 20. 2023

[연재] 소설 part_3

경계선 지능 소설

 다른 일을 찾을 수가 없으니까, 다른 일을 할 능력이 안 되니까, 복지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만 그건 중이 다른 절에 갈 수 있을 때의 얘기지 그냥 무작정 절을 나왔다간 집도 절도 없는 거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절친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리야 만날래?

  그녀는 당장 답장했다. 만남은 이번주 일요일 2시. 절친의 공장과 가까운 지행역이었다. 이틀 후면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던 남자친구와의 만남은 뒤로 미뤘다. 착하고 세심한 남자친구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절친과의 약속을 이해해 줬다.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며 물러서는 남자친구의 태도에 그녀는 감동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몰랐을 때나 나올 사랑이라고 스스로가 노파심을 가졌다. 남자친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설레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도 잃어버리게 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으나 그 기분 한편에는 불안과 회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친구는 만남 내내 피곤해했다. 근 두 달 만에 만난 자리임에도 대화는 겉돌았고 할 말은 뚝뚝 끊겼다. 친구와 친구 가족이 하는 쇼핑몰 하청업의 아다리와 그 일의 내막과 까다로움, 곤혹스러움 등등을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 역시, 그녀가 하소연하는 불만과, 실패와 좌절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만이면 싫다고 말하면 되잖아. 너,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했어? 라떼하트 못한다고 해. 너만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친구의 말에는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녀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 불편했고 실망스러웠다.


  결국 그녀와 친구는 그날 저녁, 같이 파스타를 먹다 싸우고 말았다. 파스타를 먹으며 그녀는 그때까지 금기처럼 얘기하지 않았던,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놓았다. 자신이 경계선인걸 들키면 어쩌나 불안하다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기어코 그녀를 관통했다.

  솔직히 말해줘? 거짓말 치는 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

  그녀는 친구의 그 말에, 갑자기 번쩍 치솟는 불길이라도 보듯 어찔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앉아 있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겨우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

  하... 말해야 하는 걸까?

  친구는 팔짱을 끼며 다소 무심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목구멍으로 10년 묵은 체증이 역류하는 걸 참으며 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생각해? 연인이 경계선 지능이라면?

친구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난감하다듯 말했다.

  몰라 나도. 그거 묻지 마.

  아니, 그냥 내가 너 친구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데?

  그냥 너의 솔직한 대답.

  그녀는 친구를 간절히 쳐다봤다. 친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고개를 모로 하고 입을 뗐다.

  너라면, 만나겠어? 미안하지만 나라면 안 만날 거 같아.

  그녀가 그때 느낀 감정은 수치심. 아니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이었다. 그녀의 손이 벌벌 떨렸다.

  솔직히 말하라 해서 했다. 원망하지....

  순간적인 행동이었다. 그녀는 먹고 있던 파스타를 친구를 향해 집어던지고 말았다. 친구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로제 파스타는 엉망으로 친구 앞에 엎어졌고 친구의 얼굴과 옷에 파스타 소스와 파스타 면이 한꺼번에 튀었다. 친구가 먹고 있던 봉골레 파스타도 엎어져 친구의 바지에 떨어졌다. 쏟아지고 엎어진 파스타는 함부로 도축된 짐승의 터진 내장 같았다. 뒷자리까지 파스타가 튀었고 삽시간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와 친구에게로 쏠렸다. 친구는 놀란 토끼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경악해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관계에서 그녀는 친구에게 단 한 번도 이런 비정상적인 분개의 상황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친구와 그녀는 10년간 끈끈한 우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안 좋았던 역사를 공유하며 쌓아온 관계였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그들의 관계를 한순간에 파멸로 만들었다.

  널브러진 파스타가 핏방울처럼 벽면과 바닥, 사방으로 튀었다. 10년 우정이 파스타와 함께 산산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직원들이 급하게 달려왔고 친구는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괜찮으십니까?

  직원 한 명이 그녀와 친구를 당황스레 번갈아봤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얼어붙어있었다. 직원들이 급하게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빠르게 닦기 시작했다. 손님들에게 일일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있는 직원들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혹시 쏟으셨나요?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는 그녀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에 분이 저분한테 파스타 집어던졌어요.

  그녀와 친구의 옆 테이블에 앉았던, 아이들을 데려온 어머니 하나가 사건 증언이라도 하듯 말했다. 직원과, 손님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모두 그녀 자신을 질타하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자지러지듯 울고 싶었다. 친구 역시 당황으로 얼굴이 빨개져있었다.

  너랑은 끝이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얼굴이 흥분으로 새 빨개진 것 치고는 낮고,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였다. 친구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식당을 빠져나갔다. 열이 오른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냉랭한 태도였다. 휑하고 야멸친 바람이 그녀의 뺨을 치는 것 같았다.


  그녀의 흰 니트는 파스타 자국들로 얼룩덜룩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더 심하게 얼룩져있었다. 그녀는 엉망이 된 얼굴로 1호선 전철을 탔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때 그녀를 가장 서럽게 한 것은 돌발 행동을 한 것이 아닌, 자신이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 자체였다. 그녀는 분노보다 내내 수치심을 느꼈다. 미안함보다는 절망을 느꼈다.

  너라면 만나겠어?

  친구의 말이 자꾸 비수가 돼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 울면서,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오래가고 가까스로 전화를 받은 남자친구는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 했다.

  어 아리야. 지금 형님들이랑 사무실이어가지고....

  그녀는 흑흑 대며 울기 시작했다. 무선 신호 저편의 남자가 당황해하는 게 느껴졌다.

  너 울어? 저기 나 사무실인데 이따가 다시....

  너라면 만나겠어?

  응? 뭐라고?

  너라면 만나겠어? 너라면 만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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