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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Feb 19. 2023

[연재] 소설 part_2

경계선 지능 소설

  자기야 카페 순 수익이 얼마야?

  흡사 나방의 날개색 같은 희뿌연 빛이 그녀의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게 하는 모텔 방. 알몸의 남자친구의 물음에 그녀는 난처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길었던 관계를 끝내고 지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을 때, 그 물음에 그녀는 살짝 긴장했다. 그녀는 숫자에 어두웠고 카페 순수익 따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영업의 순수익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그녀 같은 청년들의 몫이 아닌, 사리분별이 더 확실하고 청년들을 지도편달하는(?) 입장의 복지사들만이 아는 일이었다. 그녀는 카페 시제 정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글쎄? 한 7만 원 되려나? 재료비야 지원받으니까.

  그녀는 얼버무렸다. 현금 수익만 잘 나와봐야 2만 원이 나오는 걸 모르지 않는 그녀였으나 말은 툭툭 나왔다.

  내년 되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벌 수 있어. 구청 케이터링 같은 이벤트도 우리가 맡을 거고 복지관에서 하는 베이킹 프로그램의 재료도 우리 쪽으로 구매할 거고 카드도 받을 거야. 지금보다 홍보도 훨씬 많이 할 거라서.

  언젠가 자신의 정체성을 남자친구에게 들킬지도 몰라 불안해하며 복지사 한 명에게 털어놓았을 때, 복지사가 그녀에게 한말을 그대로 들려준다.

  아리씨. 그렇게 설명해 주세요.

  복지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남자친구에게 읊자 남자친구는 그런 것 따위 그냥 물었다듯, 내밀한 정사를 끝내고 노곤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결혼하자.


  엄마, 남자친구랑 카페에서 얘기 좀 길게 하느라.

 12시가 가까워 가는 시각.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 안에서, 어머니의 전화에 대답하는 그녀 목소리가 떨린다.

  빨리 와. 엄마 속 타는 거 안 보이니?

  그녀 어머니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빨래도, 청소도 못하고 요리는 평생 어머니가 해주는 밥만 받아먹었다. 제 힘으로 장조차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사실 가장 중요한 대상은 어머니였다. 그녀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서른이 가까운 성인인 그녀를 통제하는 관제탑이었다. 통제와 동시에, 없어지면 그녀 인생에 혼란이 초래됐다.

  통제와 생존을 같이 틀어쥐고 있는 그 영향력 있는 존재에게, 그녀는 끊임없이 불만이 들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 인생에 필수불가결이었으니까.

  어머니의 말은 법은 아니었으나 법보다 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거슬러서 잃게 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 통제에 불응하나 더 큰 통제 불능은 원하지 않는다. 그게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묵시적 대답이었다.

  빨리 갈게.

  지금이 몇 시니? 일단 들어와.

  빨리 간다니까.

  그녀는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을 보며 불안해졌다.


 어머니의 언성은 높아졌다. 암묵의 합의라고 생각했던 11시의 탑이 1시간이나 무너진 자정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그녀는 대치했다. 그녀는 항변했고 어머니는 단호했다. 그녀는 부당하다 느꼈고, 어머니, 당신은 그녀가 야속했고 딸이 부정해 보였다.

  내일모레 서른이라는 그녀의 말에 내일모레 갈 수도 있는 게 어미라는 응수가 이어졌다. 그녀가 요구하는 서른과 당신이 그녀에게 요구하는 하는 서른으로서의 품위는 달랐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쏘아보며 물었다.

  너 혹시 잤니?

  아니야. 카페 마감시간까지 있었어!

  솔직하게 말해! 뭐 했어? 내가 널 몰라?

  아니야! 아니라니까 그런 거!

  이젠 걔가 자잔다고 다 자니? 이런 미친년. 저능아 같은 년!


  경계선은 장애인은 아니나,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 경계에 해당하는 지능으로서, 일반인보다 느린 학습이 특징이다. 그들은 뚜렷한 학습적 특징으로 사회생활에 소외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문제에도 그들을 위한 복지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들을 끊임없이 경계로 내모는 건 지능이 경계선인 게 아닌, 사회의 부족한 인식과 제도의 미비에 있다. 이제는 사회의 편견 어린 시각에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경종을 울려야 할 때이다.

  그녀가 쓴 경계선 지능, 느린 학습자 홍보 문구에 그녀보다 한 살 어린 복지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아리씨. 제가 알아서 수정할게요. 이제 퇴근해 보세요.  

 홍보용 카드 뉴스에 들어갈 문구를 그녀는 2층 복지사 사무실에서 작성하고 있었다. 그녀의 대학 때 전공이 글쓰기 관련이었다는 점과 다른 복지관 청년들과 달리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 적이 있다는 점이, 그녀가 홍보 제작 일을 도와주는 계기가 됐다. 카드뉴스는 협동조합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것이었다.

  그녀는 복지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어차피 저 글의 대부분은 복지사 입맛에 맞게 수정되겠지. 나름 글쓰기에 자부심이 있었던 그녀는 애초에 자신의 글을 전면 수정 할 거면서 무엇하러 본인에게 글을 쓰라고 시킬까 불만 어린 생각이 들었다.

  

  홍보 문구를 작성하고 돌아가는 퇴근길. 6시를 조금 넘긴 퇴근 시간대는 흡사 원두통에 가득 담긴 원두알들을 보는 듯했다. 사람이 너무 빽빽해서 입추의 여지조차 없었다. 전철을 두 대정도 보낸 뒤에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전철 안의 사람은 너무 많았고 그들이 뿜어대는 훈기가 가득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퇴근을 위해 전철에 오른다. 그들은 모두 번듯한 직장에서 출근해 일하고 퇴근하는 정상적 지능의 사람들이다. 원두콩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고 일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


  온전히 서있을 수조차 없을 만큼 틈을 파고들어 오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들이 제대로 서있기 위해 남이 서있을 자리를 쉽게 위협하는 사람들과 자신 역시도 그래야 이 혼잡시간대의 전차 안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밀리지 않으려면 밀어야 했다. 여기에는 관용이란 없었다. 오직 원초적 본능만이 있을 뿐이었다. 전철이 급정거할 때마다 그녀와 승객들은 옆 사람을 함부로 밀었고 거기에는 양해가 없었다. 그녀는 내적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정거장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고 있었다. 아직까지 카페 수익을 한 푼도 받지 않았는데, 이런 곤란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겪어야 한다. 그녀는 분노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라도 그녀는 그만둘 수 없었다. 결국 그녀 스스로선택한 문제였다. 분노해 봤자 이 모든 건 그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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